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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자, 예수 (마2:5-6)
박영재 2009-06-30 추천 1 댓글 1 조회 3366

2008.12.21

가벼운 것에서 비중있는 것으로 옮겨라

우리의 목자, 예수

마2:5-6


요즘은 별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볼 때면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설레입니다. 반짝반짝하는 밤하늘을 보노라면 정말이지 행복이 가슴 속에서 솟아납니다. 지난 여름밤 전교인 수련회 기간에 운좋게도 빛나는 별들을 보았어요. 캄캄한 밤하늘에 별빛이 얼마나 환하고 아름다운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았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어요. 정말 아름다운 밤, 별이 빛나는 행복한 밤이었습니다.


오래 전에도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떠 있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밤이었지요. 바로 그 때에 작은 동네 베들레헴에 한 아기 예수가 태어났습니다. 응아.. 응아.. 평범한 아기가 아닌 비범한 아기였습니다. 이 광경을 본 천사가 외칩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결코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목자가 나리라. 천사가 아기 예수를 목자라고 외칩니다. 주석가들은 ‘목자가 나리라...’는 천사의 외침이 온 인류의 영혼을 위한 목자의 탄생이었다고 말합니다. 영혼을 위한 목자라... 영혼에게도 목자가 필요한가요?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은 목자가 필요합니다.


I.우리가 알다시피 인생은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산다고 합니다. 힘이 모자라서 실수하거나 후회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다만 지혜가 모자라서 아픔을 겪고 후회하는 것이지요. 지혜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혜가 부족해 고통을 겪고 후회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자기를 도와 줄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작가로서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던 오스카 와일드는 비도덕적인 작품활동으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어요. 이에 가족들이 건강한 작품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가족들은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이 여파로 오스카는 충격을 받고 방황하다가 46세로 객사했습니다. 그는 인생의 끝말에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을 오랫동안 무분별한 육체의 향락에 빠져 들도록 내버려 두었다..... 향락의 극치에 달하면 곧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흥분거리를 찾아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가곤 했다. 나의 생각은 모순으로 가득차고 나의 사랑행각은 뒤죽박죽이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계속 쾌락을 추구했다. 나는 더 이상 내 영혼의 선장이 아니었다. 난 그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무서운 수치감 속에서 내 인생은 끝나 버렸다...”


오스카는 내리막길에서 사람들의 충고를 외면했던 것을 후회했어요. 그리고 “아 나는 어리석었다!...” 한탄했던 겁니다. 말년의 후회였기에 아쉬움이 더욱 컸습니다. 좀 더 일찍 주변 사람의 지혜로, 중간에 궤도를 수정했더라면, 그렇게 가슴 아프게 끝나진 않았을 겁니다. 저는 오스카의 생애를 읽으며 그의 고백 “나는 더 이상 내 영혼의 선장이 아니었다.”란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기 인생을 잘 경영하지 못했다는 뼈저린 자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원하는 대로 이끌지 못합니다. 부족한 지혜로 인하여 가슴아파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목자가 필요한 겁니다.


이런 사람도 있습디다. 자기 지혜는 활용하지 않고 무조건 남의 지혜만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주관도 없고 미래를 품는 지혜도 없는 사람이예요. 그래서 문제입니다. 저의 어릴 적 동네에 유지가 있었어요. 유지라고 해 봐야 지금에 비하면 별것 아닙니다만 그래도 배고프던 시절에 쌀가마니를 쌓아 놓던 집이었어요. 이 가정에 독자가 있었는데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학교생활도 하기 싫다며 중단했어요. 음식 주문도 부모가 해야하고 결혼대상도 부모가 골라줘야 하고 도통 자기 의지가 없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집안을 말아먹고 말았습니다.


자기 의지는 없고 무조건 남을 의지하는 사람은 인생을 잘 살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날 이 사람처럼 인생을 산다고 가정해 봅시다. 생각 없이 멍-하니 지내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의 가는 길이 낮 설어도 교정할 줄 모릅니다. 목적 없이 표류하면서도 변화나 도전을 시도하지 않아요. 방향이 잘못 가고 있는데도 심각성을 모릅니다. 결국 후회합니다. 자기 지혜를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 그래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이유가 뭐예요? 자기 능력, 자기 지혜를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산적인 삶을 살지 못합니다. 지혜로 인생을 산다했는데 지혜가 없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우리에겐 목자가 필요합니다.


목자이신 우리 주님, 참 지혜로우셨어요. 한번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군중들이 예수님께로 데려와 이 여인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잘못대답하면 예수님을 칠 기세였습니다. 율법대로 하자니 사랑 없는 목자라 할 것이고 용서해 주자니 율법을 어긴다고 비난 받게 생겼습니다. 주님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땅에 글씨를 썼습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군중들은 아무 소리 않고 뿔뿔히 헤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며 돌려보냈습니다. 율법어기는 것도 피하고 용서도 실천하고 두 가지 다 지혜롭게 처리하셨습니다. 참 놀라운 지혜입니다. 위기를 뛰어난 지혜로 극복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하늘의 지혜를 지니신 우리 주님께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이 지혜가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 인류의 영혼을 위하여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 친히 지혜를 주시고 후회함이 없는 길로 가게 하시려고 우리의 목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목자로 오신 우리 주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으십시오. 우리 영혼에 부족한 지혜를 예수님의 뛰어난 지혜로 가득 채우셔서 후회없는 바른 길을 걸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I. 어린 양 예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들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내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이 외침이 왜 설레입니까?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가면 인생을 풍성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 축복이 있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주님께 잠시 지혜를 구하긴 하나 주님을 목자로 따르지 않는다는 데에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가끔 보면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판단이 옳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그래서 인생을 평탄하게 살고 또 뜻한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을 과신합니다. 자신의 지혜를 더 신뢰하기에 예수 안에 있으면서도 주님을 따르지 않아요. 그러다가 꽝-하고 얻어맞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양된 인간이 각기 제 길로 갔다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양은 시력이 10미터도 채 되지 않습니다. 양은 목자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고 길을 이탈하면 돌아올 수 없습니다. 시력이 약한 양이 흩어지면 어떤 양은 낭떠러지 방향으로, 어떤 양은 먹이가 없는 광야로, 어떤 양은 이리가 기다리는 곳으로 흩어집니다. 그러면 그들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목자의 인도를 받지 않은 채 자기 지혜로만 살아가면 때론 절망의 길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의 길로 가게 됩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농사는 자식농사이고 가장 어려운 경영은 인생경영이다. 옳은 말입니다. 인생의 출발은 좋았고 아름다웠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요. 그 이유가 뭐예요? 혼자서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아무리 열정적으로 살아도 상처뿐인 영광만 남기 쉽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창세기의 롯은 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의욕과 열정이 대단하여 밖으로 뻗길 갈망했어요.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한 장소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삼촌 아브라함보다 먼저 비옥한 땅을 차지하는 지혜를 발휘하였어요. 그래서 소돔성을 선택했어요. 하지만 이 선택은 그에게 불행의 올가미를 씌우는 어리석은 선택이 되었습니다. 소돔성이 죄악으로 가득차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하였고 그도 깊은 상처를 받았어요. 아내는 죽었고 모아놓았던 재산을 잃었으며 가족이 도덕적으로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꿈, 열정, 의욕은 있었으나 그것을 펼치는 지혜는 별로 였습니다. 아니 자기 꾀에 넘어간 꼴이 되었습니다. 결국 시작은 좋았으나 끝이 불행했어요. 여기에 그의 어리석음, 지혜의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롯이 방향을 잘못 갈 때 누군가 가르쳐 주었다면, 아니 처음부터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 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여기에 그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은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목자이신 우리 하나님을 얼마나 진실하게 의지했는지 승리할 때가 많았습니다. 다윗은 한 때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불안에 떨며 숨어 살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날 다윗이 군사들과 본거지인 시글락을 잠시 비웠는데 아말렉군사가 쳐들어와 마을을 불태웠고 가족들을 끌고 갔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어요. 설상가상으로 다윗의 추종세력들은 오히려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원수를 갚을 능력도 무기도 훈련된 군사도 없는 다윗이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혹 섣불리 전투를 치렀다가 패한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이 때에 다윗은 일생에서 가장 진지하고 민감하게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어요.

의지하고 또 의지하였어요. 여러분, 자신의 부족을 크게 느낄수록 목자이신 하나님을 더 절실히 의지하는 줄로 믿습니다. 겸손한 사람일수록 주님이신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할 줄 믿습니다. 다윗이 그러하였어요. 놀랍게도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어요. 할렐루야! 다윗에게 전투해야 할 시기와 방법을 말씀하며 승리의 확신을 주셨어요... 다윗은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환경을 좇아 나아갔고 마침내 적은 수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롯은 부유했으나 모든 것을 잃었고 다윗은 빈손이었으나 더 부해졌습니다. 롯은 끝이 좋지 않았으나 다윗은 승리로 장식했어요. 이유가 무엇이예요? 롯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으나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롯은 홀로였으나 다윗에겐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났고 롯은 혼자였으나 다윗에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승리하는 비결이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려고 우리 삶 속에 깊이 들어오길 원하셨어요. 그래서 아기 예수로 이 땅에 오셨어요. 지금도 주님을 목자로 따르는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도 이겨내고 능력이 모자라도 극복합니다.  여기에 주님을 목자로 모신 자의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난 역경을 헤쳐 나갈 만큼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럴수록 아기 예수를 따르십시오. 목자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지혜와 그 분의 인도를 따르십시오. 주님이 겸손한 사람에게 하늘의 지혜를 덧입혀 후회함이 없도록, 복된 길을 걷도록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이 주님을 좇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II. 주님의 지혜를 덧입고 사는 것이 이렇게 복이 되는데 더 복이 되는 삶이 있어요. 필요할 때만 드문 드문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예 24시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겁니다. 주님이 우릴 수시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아예 우리의 목자가 되셨어요. 지혜가 뛰어나시고 능력이 뛰어나신 주님이 우리를 24시간 인도하신다면 우린 항상 축복된 길로 인도받습니다. 최고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요. 여기에 예수가 우리의 목자됨의 의미가 있습니다.


목자를 보세요. 목자는 이른 아침에 우리에서 나온 배고픈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이끕니다. 목자는 어디로 가야 풀이 많은지 알고 있어요. 목자는 양들을 풀이 없는 광야로 인도하지 않아요. 메마른 사막이나 위험한 곳으로도 인도하지 않아요. 목자는 양이 충분한 꼴을 먹을 수 있고 편히 쉬며 낮잠을 즐기는 안전한 장소로 인도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목자는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세요.


여러분, 양의 생리를 잘 아시지요? 양이 풀을 뜯다가 혹은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넘어지거나 웅덩이에 빠져 네 발을 위로 하게 되면 양은 혼자서 일어나지 못합니다. 양이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위장에 가스가 차서 몸이 붓고 나중에는 숨을 쉴 수가 없이 정신이 혼미해져 죽어가지요. 혹은 죽기 전에 독수리나 짐승의 밥이 됩니다. 이런 일이 나타나기 전에 목자는 넘어진 양을 일으켜 세우고 혼미한 양을 가슴에 품습니다. 그리고 붓기가 빠질 때까지 몸을 어루만져줍니다. 양은 점점 정신이 돌아옵니다. 목자의 도움으로 양이 소생하는 겁니다. 여기에 목자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평생 동안 경험하였던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가 나를 소생시키시며... 할렐루야!


지금도 목자이신 우리 주님이 넘어진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것이 감사하지요. 젊은 시절 방황하며 방탕하며 살았던 성어거스틴, 그는 주님을 떠난 후에 무엇을 하더라도 만족할 수가 없었어요. 피곤하고 지쳤을 뿐이예요. 결국 돌고 돌아 주님 앞으로 나아와 주님의 인도를 받기 시작하면서 고백한 유명한 말이 있어요. “내 영혼의 목자이신 주님에게로 돌아오기 전까지 내게 안식이 없었나이다.” 그가 주님 곁을 떠났을 때 방황하였고 상처를 입었고 후회스러웠습니다만 영혼의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를 받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행복했고 의미 있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가나안 땅에 정착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기근이 발생하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를 외면하고 애굽으로 내려갔어요. 애굽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바로왕의 위세에 눌려 아내를 빼앗기고 가정이 해체될 위기를 맞았어요. 그때 놀랍게도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바로 왕을 꾸짖으시고 아브라함을 위기에서 구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생명을 구원해 주셨고 그의 가정을 구원해 주셨으며 절대적인 위기에서 그를 소생시켜 주셨어요. 아브라함은 수렁에 빠졌던 자신, 상처뿐인 자신을 소생시켜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어요. 이것이 고맙고 감사했어요.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것이지요. 이 일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은 증언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다. 그의 필요가 채워졌고 삶이 풍성해졌어요. 여러분, 목자의 인도를 받아 소생함을 얻을 때 불안에서 평안을 얻고, 두려움에서 안식을 얻으며 불만족에서 만족을 얻습니다. 여기에 목자의 인도를 받는 사람의 축복이 있어요.


죄로 넘어졌던 삭개오, 자기 의로 넘어졌던 바울, 자기 과신과 어리석음으로 넘어졌던 베드로를 우리 주님이 말씀과 사랑과 위로로 소생시켜주셨어요. 주님을 만난 영혼마다 그릇된 길을 돌이켰고 불행한 길을 청산했으며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희망차고 의미있는 인생길로 접어들었어요. 목자를 따르는 영혼들 마다 새 삶의 축복을 얻었어요. 영혼의 소생을 얻었습니다.


성공회 외에는 어떤 종파도 전도할 수 없었던 시기에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침례교 목사님인 존 번연 목사님이 전도하다가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당시만 해도 믿는 자들이 감옥에 갇히고 사형당하던 살벌한 시절 목사님은 이 감옥에서 세계적인 명저 천로역정을 지었어요. 번연목사님은 얼마나 신실한지 감옥에서도 24시간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좇았습니다. 그야말로 주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가지 말라 하시면 가지 않는, 주님과 온전한 동행을 하시는 분이었어요. 이 목사님에게 어느 날 옥사장이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다녀오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목사님이 되돌아왔어요. 옥사가 왜 돌아오셨냐고 묻자 목사님 왈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주님이 인도하시지 않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로부터 한 시간 후 감옥이 갑자기 살벌해졌어요. 알고 보니 영국 국왕이 예고없이 직접 감옥을 시찰 나온 거예요. 그리고 유독 존 번연 목사님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돌아갔어요. 가슴이 조마조마 했던 옥사장은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 후에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언제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까 목사님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십시오."


여러분, 목자이신 주님과 동행할 때 주님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선하게 인도하세요. 우리를 안전한 길로 평탄한 길로 축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이 목자가 저와 여러분의 삶과 인격 속에 함께 하십니다. 이런 인도하심을 받기 위하여 저와 여러분은 24시간 주님의 함께하심에 깨어 있길 바랍니다. 성령으로 깨어있고 기도로 깨어 있길 바랍니다. 목자의 음성 듣는 데에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깨어있을 때 그 분의 인도하심과 함께 하시는 은혜가 우리를 선한길로 인도하십니다. 너희는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 엡6:17말씀. 깨어있는 신앙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점잖게)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결코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목자가 나리라. 베들레헴이 작지 않습니다. 왜냐면 온 인류를 구원할 어린 양 아기 예수가 태어난 동네거든요. 12월이 춥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단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기꺼이 죽으실 선한 목자가 태어나셨거든요.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 구원을 받았거든요. 우리는 행복합니다. 기쁩니다. 우리의 목자가 지혜를 주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거든요.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소생시키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우리의 목자와 더불어 기쁨과 행복이 오랫동안 간직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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