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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사명(마20:17-19)
박영재 2018-10-19 추천 1 댓글 0 조회 1646

 

원포인트설교:PRR 스타일

2018.9.2.

마태복음20:17-19

생명을 살리는 사명

 

[명제: 주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다]

기독교와 불교와의 차이점은 기독교에는 생명이 있는 반면 불교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스님들이 기독교로 개종합니다. 그 이유는 불교는 인간에게 생명을 주기보다 단지 주검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지만 한때 유명한 스님이었던 김성화목사님은 불교에 심취해 있을 때 허탈감이 컸고 그 와중에 기독교에 생명이 있음을 발견하고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기독교의 매력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종교입니다.

일찍이 예수께서 말씀하셨어요. 나는 길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 또 나는 생명을 주러 이 땅에 왔노라. 하셨어요. 주님은 인간을 생명 길로 인도하고자 이 땅에 오셨고 생명을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여러 사건 속에서 주님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보세요. 나인성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관에 손을 대시며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셨어요. 야이로의 죽은 딸, 소녀를 보고 가족들이 슬퍼하자 주님은 ‘죽은 것이 아니다. 잔다 하시며 ’달리다굼‘ 즉 ’내가 말하노니 일어나라‘ 명령하시며 소녀를 살리셨습니다. 베드로 장모가 열병에 걸려 다 죽어갈 때 주님은 환자의 손을 만져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자기의 종이 죽어간다며 주님을 급히 찾아온 백부장에게 주님이 “걱정하지 말라. 네 하인이 나았느니라.” 하셨어요. 백부장이 돌아가서 하인이 살아난 때를 물으니 주님이 살아났다고 말씀하신 때와 일치했습니다. 주님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거나 죽은 사람을 살린 것은 부지기수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생명을 살리시는 생명의 주인이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주님처럼 이렇게 생명을 살린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또 주님은 인간의 삶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죄를 짓고 사람을 피해 살던 사마리아 여인이나 큰 죄를 짓고 상처 속에 살던 여인이나 죄인으로 유명한 삭개오등을 만나시며 그들에게 잃었던 기쁨, 삶의 의욕을 되찾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병든 자를 낫게 하시고 외롭고 소외된 자들에게 기쁨, 소망을 주시며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생명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마다 영혼이 소생했고 육체가 살아났으며 생명이 약동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시며 자신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토록 열광하며 믿고 따랐던 이유가 주님이 생명의 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요 생명을 살리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시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수가 생명의 주인이심을 기억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반전: 생명의 주님이 스스로 생명을 버리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뜻밖의 말씀을 주십니다. 즉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십자가 위에서 죄인처럼 처참하게 못 박혀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한마디로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신 권능의 주께서, 죽은 생명을 살리신 생명의 주님께서 무기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게다가 이 당시 십자가의 주검은 죄인을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죽이는 처형방법이었습니다. 영광과 권세와 권능의 주께서 군중들의 야유와 조롱과 비웃음을 받으며 큰 죄인처럼 죽으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예언을 하신 후에 얼마 안 있어 실제로 마치 짐승처럼 나무에 매달리셨습니다. 손과 발이 굵은 대못으로 관통되어 살이 찢기고 시뻘건 피가 머리부터 흥건하게 흘러내려 온 몸이 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그렇게 처참하고 무기력하게 죽음을 당하실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반전의 이유 1-생명을 살리는 것이기에]

여러분, 주님이 예언하신대로 이렇게 처참하게 죽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주님이 죽으시며 더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한 알의 밀알이 썩어 죽지 않으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것은 자신의 주검을 빗댄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이 죽어야 인간이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되 일시적인 생명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걸림돌이 되는 인간의 죄 값을 치르고자 인간이 당해야 할 고통의 자리에  대신 고통당하시고 인간이 죽어야 할 그 자리에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 대속적인 주검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참으로 고귀한 희생입니다. 여기에 생명을 살리고자 주검의 길을 가신 주님의 놀라운 희생과 사랑이 있습니다.

한 곤충학자가 개미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개미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곳에 나무젓가락을 넣고 그곳에 불을 붙였습니다. 불이 났을 경우 개미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불을 끄는 방법을 몰라 당황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개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불을 발견한 개미가 자신의 몸을 불 속으로 내던졌고 다음 개미들도 마찬가지로 불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자 불꽃이 점점 약해졌습니다. 알고 보니, 개미 몸의 껍질을 이루고 있는 키틴질이 불에 타면서 소화기능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동료들을 살리고자 죽음도 불사했습니다. 참 놀랍지요? 주님의 희생이 바로 이러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고자 주검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희생, 이 생명에 평생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반전의 이유2: 왜 희생의 길을 가셨나-사명때문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주님의 이 놀라운 희생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요?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이 받은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예수님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적인 죽음의 길을 가라하셨고 주님은 이 사명을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고 사셨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6장 17장에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도 그와 같은 말씀을 주셨고 26장에서도 그와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온 것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요 사는 것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라는 믿음을 한시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주검을 늘 의식했고 마음에 품고 사셨으며 마침내 때가 되자 그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이 그 사명 감당했을 때 어떻게 되었나요?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도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우리 대신 죄값을 그 결과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얻었습니다. 한마디로 주님의 사명 감당의 믿음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에게도 영혼을 살리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주님을 영접하고 사람을 살리는 사명보다 더 고귀한 일이 없음을 알고 사람 살리는 사명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 사명 감당하다가 죽을 뻔한 위기를 수없이 맞았으나 오직 영혼 살리는 사명에 붙들려 살았습니다. 한번은 바울이 위험한 예루살렘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하자 에베소 장로님들이 위험하다며 말렸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내가 복음을 증거 하는 사명을 감당하려함에는 죽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했습니다. 결국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거기서 적들에게 붙들려 위험에 처하였습니다. 위험도 주검도 마다하지 않는 바울, 그에게 영혼을 살리는 사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 사명으로 그는 수많은 생명들을 살리는 데에 쓰임 받았습니다.

한국교회사 초기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제중원 2대 원장인 헤론이라는 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미국 테네시 의과대학이 생긴 이래 가장 우수한 성적을 올린 수재였습니다. 그는 생명을 살리는 열정에 사로잡혀 교수직을 사양하고, 1885년 내한하여 의료선교사로 헌신하며 영혼구원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5년 뒤인 1890년 한국에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때 그는 전염병과 폭염에 시달리면서도 우리 조국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환자를 치료하다가 이질에 걸려 생명을 잃었습니다. 참 숭고한 죽음이지요? 그가 숭고한 주검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생명을 살리는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26세의 어린 나이로 한국에 와서 8개월간의 짧은 선교활동을 하다가 사망한 루비 켄드릭 선교사는 평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천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생명을 한국에 바치리라.” 언더우드와 함께 최초로 조선 땅에 들어온 선교사 아펜젤러의 무덤에는 시신이 없어요. 그 이유가 있어요. 군산 앞바다에서 그가 탄 배가 침몰할 때, 바다에 떨어진 한국인 소녀를 구하려고 물속에 뛰어들었다가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어요. 이유는 하나, 하나님이 주신 영혼을 살리는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고자 원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고 또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보세요. 19절에서 십자가에서 못 박힐 것이나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하셨어요. 영혼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한 후에 주님이 최종 승리케 하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실제 주님은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승리하신 것입니다. 영광을 얻으신 것입니다. 여기에 사명 감당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영혼을 살리는 일에 목숨까지 바쳤을 때 이것이 계기가 되어 수많은 한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 그것이 한국교회 성장의 씨앗이 되었으며 오늘날 한국교회가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역사 속의 예수"의 저자 글로버는 그의 책에서 기독교인들이 복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영혼을 살리는 일에 더 많이 인내했고, 더 생각했고, 더 많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참 놀랍지요? 영혼을 살리는 사명 감당이 있는 곳에 생명이 싹틉니다. 주님이나 바울이나 한국의 선교사님들은 영혼을 살리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 사명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헤론 선교사나 루빅 켄드릭선교사나, 아펜젤러선교사도 모두가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하여 희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선 가족들을 보세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생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생명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친척들을 보세요. 가까운 친구들을 보세요. 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침몰하는 배에 승선한채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영혼을 살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 부부는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며 살다가 바울을 만났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예수의 피 묻은 복음을 전해들은 이들 부부는 예수를 영접하고 사도 바울을 도와서 평생토록 복음전파에 헌신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 후원자가 되어서 바울의 선교에 필요한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는 충성된 부부였습니다. 이 부부는 성령충만했고 전도 열정이 뜨거웠어요. 그들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 전도에 있었습니다. 평생을 사명 감당하는 일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쓰임 받았을 때 그들의 이름은 영원히 빛이 나고 있습니다.

조종건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에 영혼을 살리는 일에 열심인 부부가 있습니다. 박성희 집사와 한흥규 집사 부부가 교회학교 교사를 맡았는데 아침마다 아이들을 자기 차로 돌면서 데리고 와서 예배드리고 말씀전하며 그렇게 키웠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한명이 24명이 되었습니다. 어린 생명을 살리는 사명에 붙들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조목사님은 그들의 신앙은 마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 교회에도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영혼을 살리는 일을 사명으로 받아 쓰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업은 세속적인 직업이 직업이 아니라 진짜 직업은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지속적으로 영혼구원하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합시다.

시골에서 서울로 취직한 청년이 있었어요.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다가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갔지요. 교회에서 많은 사랑을 얻고 배우며 아주 행복해졌어요. 전도하라는 사명이 생겨 기도로 준비하고 제일 먼저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방문하여 말했어요. “서울에서 삶이 어려웠어요. 그런데 교회를 다니며 어려움을 이겨냈고 행복해졌어요. 엄마, 아버지 교회 나가면 참 행복해집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모님 중년이 되어 삶이 허전할 때 그러냐고 그렇다면 나도 나가마 하여 시골 동네에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아들의 관심은 부모님이 교회를 잘 다니시는지 날마다 체크했어요. 그리고 부모를 위하여 전화로 기도해 드리곤 했어요. 부모의 영혼을 살리는 아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하늘비전교회이 검사부인인 한 권사님은 은혜를 받고 전도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검사부인들이라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융숭하게 대접을 하였고 마음이 열렸을 때 교회를 같이 다니자고 하여 데리고 나와 맨먼저 시킨 것이 교회 부엌에 장화신고 들어가 봉사하게 하였답니다. 그러니까 초신자들이 교회에 빨리 적응하고 신앙이 부쩍 성정하더랍니다. 그렇게 성도를 정착시켰어요. 그리고 전도되어온 사람에게 전도하라고 자극을 주니 그들이 사명을 받아 전도하였어요.

친구들을 다 전도하고 나니까 이제는 전도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재래시장에 가서 콩나물 사고 두부사면서 아주 친절하게 상인들을 대해 주었더니 사람들이 누구냐? 관심을 갖길래 전도를 해서 교회를 데리고 왔어요. 그렇게 해서 전도하고 또 전도하라고 사명을 주었더니 그들이 또 전도하였어요. 한 사람으로 인하여 일 년에 수 백 명이 늘어났어요. 왜 이 일을 합니까? 전도가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영혼을 사랑하는 성도가 나오길 바랍니다.

영혼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에 일생동안 존귀하게 쓰임 받았던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 목사님에게 한 성도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전도 비결은 무엇입니까 ? 그 능력을 가르쳐 주시면 제가 배워서 전도하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윌리엄 부스 대장이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내가 어느 날 런던의 빈민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저들에게 줄 수 있는 은과 금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리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은 저에게 성령의 권능을 주셔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영혼을 살리는 일에 열정이 생겨서 결국 쓰임을 받습니다. 이런 은혜, 이런 성령 충만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가장 감동적인 사건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흘리신 보혈로 내 죄가 씻겨 졌고 내가 죄 용서받았고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올라왔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만나고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찬양 감사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또 감동적인 사건 중의 하나는 내가 전도한 사람이 그 곳에 와 있음을 발견할 때입니다. 무심코 전도했던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와 있을 때 큰 감동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큰 감동은 내가 온 정성을 쏟았던 사람이 구원받아 그 곳에 와 있을 때 그것처럼 감동적인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도자로 쓰임 받은 내게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너무 커서 놀라울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자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이 상 주신다 했는데 계시록 20장에 보면 전도한자, 순교한자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자가 천년동안 왕 노릇 할 것이라 했습니다. 최고의 상급입니다. 이 세상 상급은 일시적이지만 하늘나라에서의 상급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며 영원한 것입니다. 이 상을 특히 누가 받느냐 영혼을 살리는 일에 죽도록 충성하며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이번 가을에 영혼을 살리는 전도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며 전도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며 영혼을 살리는 일에 초점을 맞추시길 바랍니다. 전도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은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제일 큽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전도할 의욕이 생기고 영혼을 사랑하는 믿음이 생깁니다. 이 믿음으로 전도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영혼을 살리는 일에 남은 생애 힘쓰길 원하십니다. 힘쓸 때 행복하고 힘쓸 때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힘쓸 때 축복받습니다. 이렇게 살길 원하시면 아멘합시다. 이 믿음, 이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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