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말씀

  • 나눔터 >
  • 은혜로운 말씀
망하는 집안, 흥하는 집안 (삼상4:12-18)
박영재 2009-04-29 추천 0 댓글 0 조회 4122

계단을 밟고 올라가라

망하는 집안, 흥하는 집안

삼상4:12-18


I.사람은 자기 집안을 중심으로 생을 살아갑니다. 집안이 튼튼하면 삶도 행복해지고 앞길도 순탄합니다. 집안의 역할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사람은 모두가 자신의 집안이 점점 흥하길 원하지요. 점점 나아지길 바라고 점점 견고해지길 바래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어느 집안은 점점 망합니다. 또 어느 집안은 점점 일어섭니다. 지금도 수많은 집안이 망해가고 있거나 일어서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집안 중에 흥했다가 가장 비극적인 종말을 맞은 집안은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케네디집안 일겁니다. 케네디대통령 집안의 저주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에요. 케네디 대통령은 5남 2녀였는데 큰 형 조셉은 2차 대전 때에 29살의 나이로 시신도 못 찾았고 누나 로즈마리는 태어나서 뇌수술실패로 평생 병원신세를 졌고 케네디대통령 자신은 46세에 암살을 당했고 여동생은 28살에 비행기추락사를 당했으며 동생 패트릭은 조산으로 죽었습니다. 동생 로버트는 42세로 암살 되었고 막내 동생 에드워드는 69년에 여비서와 함께 강물 속에 빠져 죽을 뻔했어요.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에게의 두 아들 중 대위빗은 약물과용으로 숨졌고 두 번째 아들 마이클은 스키 타다가 나무에 충돌하여 죽었으며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은 99년에 비행기 사고로 죽었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의 살아있는 형제도 자손도 거의 없게 되었어요. 세계인의 질투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케네디가는 불행하게도 가장 비극적인 망한 집안이 되고 말았어요. 영광은 잠시였고 비극은 영원했어요. 성경에도 보면 이런 비극적인 종말을 맞은 집안이 있어요.


우리가 알다시피, 엘리의 집안은 원래 훌륭했어요. 엘리는 이스라엘에서 강력하고도 영향력 있는 제사장이었고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후반부로 갈수록 가정에 어려움이 생겼어요. 두 아들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고 자신도 의자에 앉았다가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어요. 며느리마저도 아기를 낳으면서 죽고 말았습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한 사건들이었으나 그 사건이 워낙 비극적이라서 소름이 끼칩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엘리의 가정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떠나버린 겁니다. 하나님이 그를 버렸어요. 게다가 그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한 가정으로 인하여 그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게 된 것은 큰 불행이요 슬픔이 아닐 수 없어요.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기도 제목이 하나 생겼어요. 저를 비롯한 효성의 식구들의 가정은 절대로 망하지 않게 해 달라는 간구였어요. 부흥하면 했지 절대로 쇠하거나 망하지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한분 한분을 사랑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은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는 가정,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집안의 경제가 일어나고 신앙이 부흥하는 복 있는 집안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그러면 어떻게 해야 흥하는 가정이 될 수 있을까요? 가정이 신앙으로 바로 서는 겁니다. 오늘 말씀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신앙이 약화될 때 가정도 몰락함을 보여 줍니다. 역으로 말씀 드리면 집안에 신앙이 강해질 때 그 집안이 튼튼해짐을 가르쳐 줍니다. 엘리 집안을 보세요. 엘리는 제사장이며 영적인 모델이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엘리의 판단력은 흐려졌어요. 그의 신앙의 판단력이 얼마나 흐려졌는지 사무엘상2:2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 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을 깊숙이 사랑해야 할 엘리제사장은 하나님보다도 자식들을 더 중히 여겼어요. 엘리는 하나님께 드려 져야할 예물을 자식들이 빼가도 눈감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무서운 말씀입니다. 엘리제사장은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만 자식을 더 사랑했어요.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엘리는 무엇을 가장 사랑해야 하는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졌고 결국 자식들이 죄를 짓도록 방관했어요. 신앙생활이 약해질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몇 년 전에 대전의 모교회에서 두 여학생이 서울의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한 학생은 오자마자 열심히 교회를 다녔고 한 여학생은 교회를 잘 다니지 않았어요.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던 여학생은 험한 서울 생활에서 자신의 몸을 다 망가트렸어요. 졸업도 못하더니 시집도 못가고 이상한 사람과 살다가 헤어지고 아예 불행의 늪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집안에 수치를 안겨 주었어요. 그러나 신앙생활 잘 하는 여학생은 어떤 유혹에도 자신을 지키며 소정의 과정을 잘 마치고 부모가 중매해 주는 훌륭한 남자와 결혼하여 가문의 자랑 거리가 되었어요. 딸의 불행을 보았던 그 처녀의 어머니는 훌륭한 곳으로 시집가서 부모의 자랑거리가 된 친구 딸을 보며 “내 딸도 신앙생활 잘 시킬 것을... 그러면 내 딸의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하며 눈물을 흘리곤 하였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신앙의 정신이 강하면 자신을 명예롭게 지키게 됩니다. 결실을 맺는 삶이 됩니다. 그것이 결국 집안을 빛내게 됩니다. 요셉을 보세요. 그가 절망의 늪에 빠져 13년을 지내는 동안에도 타락하지 않았던 것, 자신을 망가트리지 않았던 것은 신앙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신앙이 결국 그의 인생을 들어 올렸고 그의 집안을 흥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케네디대통령 집안이 왜 무너졌느냐에 대한 대답을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자 공립학교에서의 기도순서를 없앴던 것이 문제였다. 기도를 없앤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불경건한 태도였고 이것은 미국인의 신앙심을 흐트러트렸으며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 무시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의 가문이 비극으로 끝나게 된 또 다른 원인은 케네디 형제의 대부분과 그의 자손들은 성적으로 깊이 타락해 있었어요. 캐톨릭신자였던 그 가문은 그저 결혼식을 올릴 때나 성당을 찾을 뿐 신앙심에 뿌리를 둔 삶을 살지 못했어요. 그의 형제와 자손들을 보면 성적으로 문란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케네디대통령 자신도 마찬가지였구요. 이렇게 신앙심을 잃어가고 세속의 물결만이 그 집안에 넘실거릴 때 결국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을 보세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등의 집안 특징은 신앙심이 대대손손 이어지며 깊어졌고 그로 인해서 대대손손 집안이 번창하고 축복받았습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충만했을 때 아브라함의 집안은 영원한 축복의 조상이 되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심이 깊은 가문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 나가는 집안이라도 신앙심이 쇠퇴하면 가문은 쇠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집안이 망하느냐 흥하느냐는 결국 내 가정의 신앙심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다른 것 보다도 집안에 신앙심을 키워주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깊어질 수 있도록 신앙을 키워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집안의 신앙심을 더욱 튼튼하게 키워 흥하는 집안이 되게 할 수 있습니까?


1)오늘 말씀은 가르쳐 줍니다. 부모가 자녀의 신앙심에 영향을 미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엘리는 자녀의 신앙성장에 대해서 무관심하면서 자손들의 타락과 멸망을 가져왔어요. 성경을 보세요. 백성들이 제사에 음식을 드리거나 짐승을 잡아서 드리면 엘리의 아들들이 훼방을 놓거나 그 재물을 탈취하여 갔습니다. 2:17에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또 자녀들이 성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며 죄를 지었다고 했어요. 이 장면을 보고 아버지가 꾸짖었습니다만 자녀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아요. 이 불행한 장면을 보고 하나님은 아버지 엘리를 향해 자녀들의 신앙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것을 꾸짖었어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2:12에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고 제사 드리는 것을 훼방하고 있는데도 제사장인 엘리는 자녀들의 신앙을 방치 했어요. 자녀들이 잘못 가고 있는데도 방치하여 결국 가문의 멸망을 자초하였던 것입니다. 망하는 가문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흥하는 가문은 다릅니다. 흥하는 가문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가르칩니다. 흥하는 가문은 부모가 힘들게 살아도 자녀를 신앙으로 잘 가르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가르치고 교회를 섬기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면 자손들이 신앙을 떠나지 않게 됩니다. 자녀들이 영적으로 잘 양육 받고 연약한 가정을 튼튼하게 세워갑니다.


엡6:4을 보세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주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라고 명령하고 있어요. 또 잠언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가르치고 올바른 도리로 잘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지키며 살 때에 왜 유익한가 하나님을 잘 믿을 때 무엇이 축복인가 신앙생활 잘 할 때에 나에게 주어지는 도움이 무엇인가 등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부모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신앙생활 잘 하도록 설득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잘 하는 부모입니다.


대구에 이런 부모가 있었어요. 부모와 함께 살던 자녀가 분가하여 서울로 이사를 가자 부모는 자녀들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지를 또 잘 사는지를 물으면 대답이 시원찮았습니다. 알고 보니 밥벌이로 바쁜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조차 교회에 가지 않았어요. 신앙생활을 중단한 뒤로 아들 내외는 부부간의 갈등이 많았고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았어요. 부모는 큰일 났다 싶어 대구 생활을 정리하고 자녀들 근처로 이사를 왔습니다. 교회를 정해놓고 손자 손녀부터 교회에 데리고 나갑니다. 새벽기도를 다니며 아들 내외를 끈질기게 설득합니다. 일주일에 하루 돈 덜 벌더라도 교회 생활하여야한다 자꾸 강조합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니 어머니는 차라리 나를 죽이든지 교회에 가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니 자녀들이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말씀 듣고 찬양하고 좋은 사람들 만나니 점점 자녀들이 바뀝니다. 부부싸움이 줄어듭니다. 손자들이 교회에서 배운 것으로 집에서 재롱을 떱니다. 어느 덧 가정이 행복해졌어요. 한번은 아들이 부모님께 그럽니다. “어머니, 우리가 교회 나가고 난 후에 우리 집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신앙을 찾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이런 부모가 진정으로 승리하는 부모입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자녀들의 신앙생활 잘 하면 가문이 일어섭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자녀들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자녀들이 신앙생활에 황폐화 되어 있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을 설득하여 신앙생활 잘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훈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가정을 흥하게 하시고 이런 가정을 축복하십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찾도록 도와주시고 자녀들이 교회를 사랑하도록 도와주실 때 하나님이 그런 가정 그런 자녀를 축복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주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도록 깊은 신앙심을 심어줌으로 흥하는 집안의 주인공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우리의 집안이 흥하기 위해서 집안의 신앙심을 키워가야 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키우느냐 입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오늘 성경은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집안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엘리는 집안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도록 방치했다는 데에 그 불행이 있어요. 한 가문이 흥하느냐 망하느냐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집안에 머물러 있느냐 떠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엘리의 집안에는 처음엔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엘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녀들이 타락하고 하나님을 경시하고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며 결국 아버지가 충고해도 듣지 않았어요.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몰랐어요.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게 만들자 그들에게 불행이 찾아왔고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갈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 가문에 머무는 것이지요. 엘리제사장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하지만 그는 자녀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을 머물도록 힘쓰지 않았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보다는 자기 배만 불리는 삶을 살았어요.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부모의 말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결과 축복으로 시작하였다가 저주로 끝나고 말았어요.


제 친구 아버님은 전라북도 조그마한 면의 면장이었어요. 자녀들 교육 때문에 대전으로 이사를 왔고 제가 다니는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중에는 전라도에 있고 주말에는 대전에 와서 교회를 섬기는 분이었는데 장로님이셨던 이 분은 아주 특이하였어요. 어린 5남매를 키우면서 항상 말씀을 가르치고 외우게 하며 자녀들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고 가르쳤어요. 또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을 가르쳤어요. 이렇게 어릴 때부터 말씀과 신앙으로 훈련받은 5남매가 다 훌륭하게 되었습니다. 의사, 교수, 대전에서 제일 큰 모교회의 사모, 선교사, 대기업 간부가 되어 온 자녀들이 참 행복하게 삽니다. 저는 이 자녀들이 높은 사회적인 신분이 되었음을 밝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5남매가 얼마나 효도를 잘 하는지 부모님 말씀이라면 “아니요”가 없습니다. 그저 “예”하고 순종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들 각자는 각 교회에서 장로직분을 받고 충성된 일군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자녀 중에 한 사람도 어긋난 사람이 없어요. 다들 모이면 천국에 모인 것처럼 가족들이 행복하고 밝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사회적인 신분이 된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위하여 일합니다. 정말로 5남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마음을 합치고 뜻을 합칩니다. 하나님을 드높이는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머물게 만든 가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집안에 머물도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십시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잘 가르치십시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저와 여러분의 집안, 흥하는 집안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인생의 하프타임 (시131:1-3) 박영재 2009.04.28 1 4282
다음글 부모를 공경하라 (출20:12) 박영재 2009.04.27 1 2526

151839 TEL : 02-887-1221 지도보기

Copyright © 좋은설교연구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
  • Total184,401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