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설교연구소 이단연구 - 2
구원파가 이단인 이유
구원파는 크게 권신찬 계열, 이요한(본명 이복칠) 계열, 박옥수 계열 등 3개 파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가르침은 거의 유사하다. 이들이 '침례회' 간판을 걸고 있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한국침례회'교단이 오해를 받기도 한다.
# 권신찬(유병언) 계열 (기독교복음침례회)
오대양 사건과 (주)세모와의 관련설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자들로, 1961년에 외국 선교사의 영향으로 권신찬씨와 유병언씨에 의해 시작되었다.
# 이요한 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
구원파의 초창기부터 목포에서 권신찬을 추종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유병언이 교회 헌금을 사업에 전용하고 기업이 곧 교회 일이라고 주장하자 유병언파를 비판하면서 떨어져 나왔다.
# 박옥수 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 기쁜소식선교회, IYF)
박옥수는 중학교3학년 중퇴생으로서 체계적으로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으며 외국 선교사와 권신찬의 영향을 받았다.
1. 구원파의 주장과 이들에 대한 비판
1) "이미 구원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다"는 주장
☞ 구원파의 주장 - 회개란 '돌이킨다'는 말로써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한 번 돌이켰기 때문에 더 이상 돌이킬 필요가 없다. 이미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사했으므로 회개를 계속한다는 것은 사죄의 확신이 없는 증거이므로 구원받지 못한 지옥의 자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기도문도 외우지 않는다.('우리의 죄를 사해 주옵시고'라는 부분 때문에 외우지 않는데, 이 부분을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다'는 내용으로 바꾸어서 외우기도 한다.) 사죄를 간구하는 기도도 하지 않는다. 이 말들은 논리에 맞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회개하는 고통이 없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기에 매력적이다. 영적 투쟁을 하려고 하는데 잘 하지 못할 때 이 말을 듣게 되면 그 논리와 확신에 넘어가기 쉽다.
비판- 구원을 위한 단 1회적 회개(히6:1-8)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인 회개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시51편, 삼하 24:10, 요13:8-10, 요일 1:8-10) 또한 죄에 대한 참된 통회와 회개는 믿음에서 온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다.
2)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지옥으로 간다는 주장
☞ 구원파의 주장 - '죄인이냐 의인이냐'를 물어서 죄인이라고 하면 천국은 의인만 가는 곳이요, 지옥은 죄인이 가는 곳이니 지옥에 간다.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해야만 구원받았다.
비판- 산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고 성령의 역사 속에서 성화 되어 간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완전히 성화 되지 못했기에 죄악과 허물과 실수 가운데서 살게 된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울도 자신의 죄인 됨을 과거 시제로 고백했을 뿐 아니라(딤전1:13), 현재 시제로 고백하고 있다(딤전1:15). 현재 시제에서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정도가 아니라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이 죄인 중의 괴수이면 어느 누가 죄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구원파는 이에 대해서 디모데전서 1:15절 원문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잘못되었다고 하지만, 현재 번역이 원문과 일치함이 확인되었다.
3)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니 교회의 제도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주일성수, 새벽기도, 십일조는 율법의 소산이다"는 주장에 대해서
☞ 구원파의 주장 - 믿음으로 구원 받았는데, 왜 주일 성수, 새벽기도, 십일조와 같은 율법의 소산들을 행해야 하는가 ? 우리는 이제 믿음 안에서 자유를 얻었는데, 다시 율법적인 생활로 되돌아가서는 안된다.
비판- 구원은 믿음으로 값없이 얻는 은총이므로 구원 얻는 조건으로 다른 무엇을 첨가해서는 안 된다. 구원받은 사람일수록 질서를 지키고 교회의 제도와 법을 더욱 존중해야 한다. 이는 교회의 모델이 되는 초대교회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행2:46). 교회는 신앙성장과 교제를 위한 것이다. 주일 성수, 새벽 기도, 십일조 등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의무이며 은혜 받는 통로이다(눅11:42).
4) "이미 구원받았으니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 구원파의 주장 - 예수께서 힘든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모두 하셨다. 우리는 이제 누리기만 하면 된다.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어리석고 교만한 행동이다. 설령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죄를 지어도 죄로 정죄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들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가?
비판-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없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롬1:1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다. 구원을 위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완성하셨지만, 선교를 위해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선교를 위해서 고난과 희생, 섬김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섬기는 길이요,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길이다.(히13:12,13)
5)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주장에 대해서
☞ 구원파의 주장 - 권신찬 씨가 「죄사함을 깨닫고」, 이요한 씨가 「복음을 깨닫고」, 박옥수 씨가 「거듭난 체험」을 했다는 것은 다 같은 뜻으로서 「깨닫고 거듭나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깨닫고 거듭난 시각, 곧 구원받은 시각(영적 생일)을 알아야 한다. 육적 생일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영적 생일을 기억해야 구원받은 증거가 확실하다.
비판- 육적 생일은 부모나 타인에 의해서 알 수밖에 없는데, 구원파의 논리를 따르면 영적 생일도 타인이 가르쳐 주어야 알 수 있다는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믿음을 통해 주어지는 것인데, 이들은 깨달음 자체가 구원을 얻게 하는 것처럼 주장하여 영지주의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성경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고 그 믿음이 성령으로 인쳐질 때 구원받는다고 하였다(롬8:11,롬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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