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8.
문제제기, 해결책을 찾아라
자기 허물을 깨닫는 사람
딤전1:12-16
[사람은 자신의 문제점을 보지 못하므로 고통을 겪는다]
요즘 인기리에 판매되는 Blind Spot 이란 책이 있습니다. “맹점”이란 뜻이지요. 자동차를 운전할 때 백미러나 사이드 미러에 보이지 않는 사각 지대가 있습니다. 이 사각지대로 인하여 자동차 사고가 나곤 합니다. 잘 볼 수 없는 곳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위치를 맹점이라고 합니다.
저자인 매들린 반 헤케는 이 책에서 사람에게도 이런 맹점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남의 모습을 잘도 보고 비판도 잘합니다만 정작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합니다. 가령 전체를 놓고도 부분밖엔 보질 못한다든지 자신의 행동, 태도, 생각에 문제가 있어도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또 편견으로 인하여 본질을 곡해하여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고통이 따르며 변화와 성장, 성숙이 없고 새로워지질 못합니다.
한번은 늘 얼굴이 어두운 자매님에게 제가 “성도님, 얼굴이 어둡네요. 무슨 일이 있나요?”그러자 이 자매님이 깜짝 놀라며 “목사님, 제 얼굴이 어두웠나요? 저는 전혀 몰랐어요.” 합니다. 자신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다니는 줄을 몰랐던 거지요. 그 이후부터 의식적으로 환하게 하려고 애를 쓰더라구요. 어느 성도님은 말이 참 거칠어 그의 친구가 “자네는 말이 참 거칠어!” 하자 얼굴이 빨개지며 내가 정말 그랬느냐고 미안하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에게 고쳐야 할 문제가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초대교회성도들이 늘 배우기는 하나 진리에 이르질 못했어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러잖아요? “당신들은 늘 배우기는 하나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도다.” 배우고는 있으나 깨닫는 것도 달라지는 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그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어요.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라오디게아교회가 자신들의 문제점을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면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사람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지 못할 때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상처, 고통이 주어진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애굽의 바로 왕에게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내 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재앙을 내리리라. 말씀하지요. 그럼에도 바로왕은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애굽에 무려 10번의 재앙을 내리시지요. 10번의 재앙을 입는 동안 나라가 엄청난 손해를 입었으며 각 가족당 한 사람 이상씩 죽어나갔습니다. 그때서야 왕이 고집을 꺾는 듯 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백성을 내 보낸 후에 바로는 또 군대로 쫓아갑니다. 결국 홍해에서 모든 군사가 수장되어서 죽고 말았어요. 한 사람의 고집이 나라를 망가트렸어요. 저는 바로 왕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자기의 고집으로 인하여 나라가 망했다는 것을 과연 깨달았을까? 사람들 중에는 죽을 때까지도 자기의 문제점이 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정말 큰일 아닌가요?
몇 년 전에 어린 외손녀를 데리고 70이 넘은 한 할아버지가 제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할아버지는 20대 후반에 갓 결혼해서 70이 되도록 방랑자로 살았어요. 가끔 한번 씩 집에 돌아와선 잠시 머물다 나가고 그렇게 살길 수십 년 이제 70이 돼서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홧병으로 몸이 망가졌는데 앞을 잘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자신의 불성실한 결혼생활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 온 몸으로 느꼈어요. 자녀들이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아니하고 시집간 딸은 남자를 뭐처럼 안다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그럽니다. “누가 딸의 마음에 남자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을 갖게 했는지 아세요? 바로 접니다. 아내는 마음 문을 열지 않습니다. 저와 대화를 하질 않아요. 누가 제 아내를 병들게 했는지 아세요? 바로 저입니다.” 할아버지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내 결혼생활 방식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이렇게 큰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왜 젊어서 알지 못했을까요? 내가 얼마나 큰 죄악 가운데 헤맸는지 왜 진작에 알지 못했을까요? 저로 인하여 아내가 몹쓸 병에 걸렸는데 어떻게 죄값을 치를까요? 보상할 길이 없어요...” 눈물이 참 많으시더라구요. 깊이 뉘우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사실을 깨닫는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 너무 늦어 만회할 길이 없어요. 한 사람의 어리석음이 긴 세월 가족에게 아픔을 주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와 가족에게 상처를 주면 그 상처 내가 받는 겁니다. 남편들이여 아내에게 상처를 주지 마세요. 남편들이여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지 마세요. 아내가 가족이 행복하게 살도록 보호하세요. 남편들만 따라해 봅시다. 아내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리라.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 허물을 빨리 깨달을 수 만 있다면 참 좋은데 그렇게만 한다면 자신도 남도 고통을 겪지 않고 행복할 수 있을텐데 여기에 안타까움이 있어요.
사람이 자신의 문제점을 빨리 깨닫고 시정해야 행복도 아름다움도 앞당겨 집니다. 그러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면 불행도 오래갑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내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내 귀를 열어 듣게 하소서. 내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소서. 여러분, 자기 어리석음을 깨닫고 어리석음을 보고 어리석음을 느끼는 영혼이 되어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영혼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예요? 하나님이 나의 문제점을 보고 깨닫도록 눈과 귀를 열어주신 사람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장하며 새로워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총이 임하시길 그래서 새로워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 사람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어떻게 해야 빨리 깨닫고 자신의 허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선 타인의 가르침을 깊숙이 그리고 크게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맹점을 오랫동안 깨닫지 못하고 타인에게까지 고통을 안기는 사람이 누군가요? 남의 교훈을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남의 가르침을 듣지 않는 사람은 미래가 가능성이 없으며 하나님이 쓰실 수도 없어요.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발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냐면 자기 얼굴을 거울로 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거울은 쳐다볼 때만 잠시뿐 금방 자기 얼굴을 잊어버리지요. 사람은 자신을 깊이 생각하지 않기에 자기 맹점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맹점이 크고 많다하더라도 남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는 사람은 빠른 속도로 고칠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어느 날 왕궁에서 부하 아내 바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성욕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구체화되어 생각이 행동으로 옮기게 되고 결국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가리려고 했으나 바세바의 남편에게 들킬 것 같자 마침내 남편을 최전방에 내 보내 그를 죽게 합니다. 한 가정의 행복을 깨트렸고, 자신이 고이 지켜오던 윤리를 깨트렸으며 하나님으로부터의 신뢰를 무너트렸어요. 그는 자기의 죄와 죄로 인한 괴로움 조차 숨기려했습니다. 다윗이 여기까지는 나빴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나단선지자가 다윗의 죄를 알고 지적하고 책망하자 그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습니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어요.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하나님을 슬프게 했다고,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입술로 토해내기 시작했고 이 통회는 며칠이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금식하며 깊이 뉘우쳤어요. 그리고 그는 정말로 전혀 딴 사람, 깨끗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정말로 새로워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선지자의 가르침을 무시하거나 뻔뻔하게 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르침과 교훈을 크게 진실하게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새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다시 거룩한 인격자로, 신실한 사람으로 구약의 최고의 왕으로 세워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남의 조언을 깊이 받아들이고 새로워지는 사람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요 축복의 길을 여는 사람입니다.
제가 전도사로 일할 때 저와 함께 봉사하시는 집사님이 한번은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여자는 어떻게 하면 다룰 수가 있나요? 그 때 저는 즉각적이며 단호하게 “때리세요. 여자와 뭐는 때려야 말을 잘 듣는 답니다.”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집사님이 너무 황당하다는 듯이 저를 바라보며 말을 못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하필 그 집사님 가정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갔는데 부인집사님 앞에서 밥을 제대로 먹질 못했습니다. 일년 후에 결혼하여 미국에서 신혼을 막 시작할 즈음 아내와 말다툼을 하던 중 제 손이 번쩍 올라갔습니다. 아내는 제 손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저를 야만인이라며 빗줄기같은 눈물을 흘렸어요. 저는 깜짝 놀라서 손을 내렸습니다. 아내는 며칠 동안 저와 말도 하지 않았어요. 저는 아내의 눈물을 크게 받아들였어요. “어린 시절 보고 자란 잘못된 습관이 내 결혼생활에 악 영향을 미쳤구나. 다시는 손을 올리지 말자.” 그 이후로 저는 한 번도 손을 올려본 적도 없습니다. 아내의 눈물을 크게 받아들였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우리는 크고 작은 사건 을 크게 받아들이면 교훈을 얻고 삶이 바르게 세워져갑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때 새로워집니다. 성경은 증언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말씀의 가르침을 믿음으로 받을 때 우리의 맹점이 깨달아지고 고침 받고 새로워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들어도 고침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말씀을 듣는 자가 믿음으로 화합지 아니함이라.(히4:2) 말씀을 들어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교훈을 크게 받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말씀 듣는 중에 맹점이 깨달아집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이 변화가 일어나도록 축복하십니다. 할렐루야! 여기에 은혜가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으로 들어 교훈이 나의 가르침이 되고 내 영과 혼과 골수까지 새롭게 만드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여러분, 우리가 또 언제 우리의 맹점을 깨닫고 새로워지는 줄 아세요? 우리가 고통을 만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시기 위하여 때론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인 죄로 가정을 떠나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는 도중 첫날 밤에 벧엘에 이릅니다. 하늘을 지붕 삼고 돌을 베게 삼아 처량하게 잠을 청하는데 앞날이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그런데 꿈 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야곱은 “하나님 나를 축복하시면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서원 기도합니다. 그 후에 야곱은 삼촌 집에서 20년 간 가족을 일구고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에 세겜에 정착하였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자녀들이 세겜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였습니다.
세겜 땅에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어요. 야곱은 이런 일이 발생한 원인이 자녀들에게 신앙을 심어주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즉시 가족들에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공포하고 하나님과 약속했던 벧엘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축복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야곱은 집안에 닥친 고통으로 인하여 무뎌진 신앙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여기에 축복이 있습니다.
때때로 고통은 자신의 허물을 보게 하고 자신의 문제점을 깨닫게 하여 영혼을 새롭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으로 인하여 깨달음과 변화 새로워짐의 역사를 갖는지요. 고통으로 인하여 바르게 세워져 가는 것이지요. 고통으로 인하여 축복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헨리 나우웬은 고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고 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고통은 고통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천의 제 친구 목사님 교회에 한 검사 분이 출석하시는데 부인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이 분은 소극적이예요. 게다가 때론 매우 날카롭고 비판적이라 교회에 덕이 안되요. 에배시간에 찬양도 않고 기도회 한번 오지 않는 사람인데 매사에 비협조적이고 자기 목소리가 크던 사람이었답니다. 그런데 이 분에게 어린 자녀가 아파서 부부가 신앙으로 매달리기 시작하였는데 신앙이 뜨거워지더니 찬양하자면 제일 크게 부르고 통성기도 하자면 두 손을 높이 들고 뒷자리에 앉던 분이 앞자리에 앉으며 교회의 모든 궂은 일에 앞장섭니다. 완전히 바뀌었어요. 어느 날 목사님께 그러더래요. “목사님, 제가 왜 그동안 가시 노릇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하여 자신의 허물을 보게 하시고 변화시키셔서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고통은 하나님의 선물이예요. 하나님은 고통을 통하여 나의 영혼을 다듬고 맹점을 치유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세워가십니다. 우리의 고통 중에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총으로 새로워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II. 사람은 또 언제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새로워집니까?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날 때입니다. 사도 바울은 경건한 사람이었고 신앙의 열심을 품었던 사람이었어요. 그의 학식과 그의 가문은 누구보다도 뛰어났어요. 그런데 이런 배경 때문에 그는 교만했고 어리석었으며 진리를 깨닫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어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질 못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얼마나 심하게 핍박을 하였는지 심지어 돌로 쳐 죽이는 데에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빗나간 열심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러한 그에게 일대 변혁이 일어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가 다메섹을 향하여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어요.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자신의 맹점,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시려고 바울을 만나주신 것이지요. 바울은 믿어야 할 주님을 부인하였고 섬겨야 할 주님을 배척한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수십년이 지나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고백합니다. 13절에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 포행자란 사납고 난폭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신의 그릇된 열심이 경건한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훼방하고 핍박하였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자신의 과거의 삶을 철저히 드러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것만이 아니예요. 자신을 향하여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 고백합니다.
자신의 허물, 어리석음, 맹점을 깊이 깨달은 겁니다. 언제 이런 일이 생겼느냐 주님 만나고부터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자랑하던 학식, 훌륭한 가문 배경을 배설물처럼 다 버렸어요. 그리고 누구보다도 겸손해졌고 신실해졌으며 예수님 이후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인식되었습니다.
신앙이란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죄인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거짓인생에서 진실한 인생으로 자기를 찾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 이렇게 변하는 겁니다. 보이지 않던 자신의 맹점, 어리석은 점이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고침받고 싶어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손을 대십니다. 치료하십니다.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 분노, 상처를 빠져나가게 하시고 용서와 사랑을 심어주시며 행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죄를 좋아하던 인생이 죄를 끊고 순결한 삶을 산다는 것 정말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이렇게 됩니다. 여기에 신앙생활의 축복이 있습니다.
훌륭한 삶을 살던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가 예배드리러 성전에 들어갔다가 하나님의 영광에 휩싸였을 때 자신의 죄가 깨달아져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거룩한 줄 알았으나 아직 멀었음을 깨달은 거예요. 자신의 참모습을 깨달은 것이지요. 이 깨달음 후에 그는 더욱 신실하여졌고 놀랍게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마다 자기의 허물을 깨닫습니다. 새로워집니다. 여기에 축복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지독한 죄인이었음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그 다음이 더 중요합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의 십자가의 긍휼을 덧입었습니다. 그리고 은혜, 믿음, 사랑이 주님으로부터 넘치도록 풍성히 부어졌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내가 죄인이다란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괴롭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는 바울이 죄인임을 깊이 깨닫게 하는데서 그치지 않았어요. 죄의 흔적을 제거하시는 긍휼을 베푸셨고 은혜, 믿음, 사랑으로 그의 빈 가슴을 풍성히 채우셨습니다. 그 결과 불안 두려움이 사라지고 12절에 보니 감사로 충만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충성되이 여기 직분을 맡기신 것에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6절 하반 절에서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고 자기를 세워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것이 감사하고 놀랍습니다. 죄를 깨닫는 데서 출발하여 믿음의 본이 되도록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 또 감격했어요. 자기 허물을 깨닫는 영혼에게 하나님은 이처럼 놀라운 축복을 베푸십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축복을 하나님이 베푸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와 있는 것이예요. 할렐루야!
여러분, 어떤 사람이 예수 믿고 이렇게 죄를 깨닫고 은혜 속에 들어가 새로워져 하나님의 일군으로 세워지나요? 하나님을 진정으로 갈망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손길을 사모할 때입니다. 제 친구 목사님교회에는 전도에 아주 열심을 내는 권사님 한 분이 있답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의 친구의 남편이 있는데 부인은 겁이 나서 남편에게 전도도 못했대요. 바울처럼 포악하고 험상궂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분이랍니다. 권사님이 전도만 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니. 말도 꺼내지도 마라. 차라리 나를 믿어라” 하며 권사님을 윽박질렀답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괴짜입니다. 그럴 때마다, “아저씨 그래도 예수님 믿어야 해요!” 하였답니다. 한번 따라해 봅시다. “그래도 예수님 믿어야 해요!” 그런데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지 않던 사람이 어느날 연락이 와서 가보니 간암에 걸려서 목소리도 약해지고 다 죽어가는 모습이랍니다. 그 때에 이 권사님은 그를 보자 “낫고 싶으시죠?” 묻자, 힘없이 예 하길래 낫는 방법이 있어요. 예수 믿읍시다. 하나님이 믿기만 하면 치료하실거요. 하자 그 거부감이 컸던 사람이 따라서 기도를 하더랍니다. 매일 심방하며 기도하고 예배드리니 영혼이 점점 힘을 얻고 하나님을 의지하더니 어느 날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사실 하나님이 무서워서 믿지 못하였다고 하더랍니다. 진실해진 거지요. 자신의 참 모습을 고백한 거지요.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그는 하나님을 절실히 찾고 의지하였는데 결국 수술하고 5년이 지난 지금 신앙생활 잘 하고 하나님 잘 믿고 쓰임받는 집사님이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진심으로 갈망할 때 하나님은 몸도 마음도 치유하십니다. 허물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리라. 할렐루야! 오늘 이 아침 몸과 마음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도록 하나님을 사모하며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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