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1.
계단을 밟고 올라가라
뜻을 세운 사람
단1:8-9
I. 뜻을 세울 때가 세우지 않을 때보다 축복이 된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졸업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그중 75%는 분명한 뜻을 밝혔고 나머지 25%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0년 후에 이 졸업생들을 다시 조사해보니 뜻을 세웠던 사람들 중에 93%는 자기 삶에 만족하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고 뜻을 세우지 못했던 사람들 중에 72%는 인생을 실패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뜻을 세우고 사는 인생이 훨씬 잘 사는 것을 봅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에 두 젊은이가 인생을 흥청망청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술집으로 향했어요. 그런데 교회 앞을 지나가는데 주일 설교 제목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한 청년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술집가지 말고 교회가자 하였어요. 그러나 친구는 끝까지 술집을 고집하는 바람에 한 사람은 교회로 한 사람은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교회로 향한 젊은이는 하나님을 믿으며 믿음이 성장하고 건실해져 30년 후에 마침내 미국의 22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술집으로 향했던 그는 감옥에서 친구의 대통령취임식 소식을 들었어요. 뜻을 세운 사람은 의미있는 인생으로 세워진 반면 뜻을 세우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부끄러운 인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뜻을 세우면 인생이 왜 달라지는지 아세요? 뜻을 세우면 긴장하며 노력하게 됩니다. 방해가 되는 것들에는 스스로 절제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세운 뜻에 집중하게 되고 결국 발전하여 꿈을 이루게 됩니다.
이승헌씨가 지은 “뇌안의 혁명”이란 책을 보면 사람은 뜻을 세우면 세운 뜻이 신념으로 바뀐답니다. 그리고 그 신념은 비전으로 바뀐다는 겁니다. 결국 뜻을 세운 사람은 비전을 품고 좇아가게 되고 인생을 잘 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잖아요? 높은 산처럼 뜻을 세우라. 그리고 깊은 바다처럼 덕을 심으라.
오늘 말씀에는 뜻을 세운 사람 다니엘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 때 바벨론 왕은 이스라엘에서 젊고 똑똑한 사람들을 마구 잡아갔습니다. 그 가운데 다니엘이 붙들려 갔는데 다니엘이 얼마나 성실한지 왕의 시중을 드는 벼슬까지 올라갔고 왕의 총애까지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에게 꺼림찍한 것이 있었어요.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이 왕의 상에 올라오고 다니엘은 그 음식과 술을 먹어야 했어요. 다니엘은 하나님이 이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 다니엘은 뜻을 세웁니다. 8절에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은 왕이 먹는 음식으로 내 몸을 더럽히지 않으리라. 결단했어요. 이유가 뭡니까? 신앙을 지키려는 뜻에서입니다. 사람이 외국에 잡혀가면 자기 신앙버리며 그곳 풍습에 젖어들기 쉽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잊고 사람의 비위만 맞추기 쉽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신앙을 먼저 생각했고 하나님을 먼저 생각했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는 조금도 관련되지 않겠다!” 다니엘이 큰 뜻을 세웠습니다. 이런 다니엘을 향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어요? 길을 여셨습니다. 9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하나님이 믿음의 뜻을 세운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은혜를 베푸셨어요. 할렐루야!
한국유리 창업자인 최태섭 장로는 젊어서부터 정직하게 살겠다고 뜻을 세웠습니다. 그가 한참 사업을 할 때 6.25가 터졌고 그는 대출 받은 돈을 1.4후퇴 때 은행에 갚으려 했어요. 그러자 창구직원은 "이 난리 통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갚을 필요가 없다" 며 피난이나 가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시편 24편의 말씀이 떠올랐어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결국 최장로는 신앙양심상 돈을 갚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제주도에서 만난 군사령관은 최장로의 정직함을 듣고 군부대에 신선한 생선을 납품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는 최선을 다해 공급했습니다. 그런데 물량이 늘어나자 어선을 구입하여 원양어업에 뛰어들 계획을 세웠고 사업자금 융자를 신청하기 위해 은행을 찾아갔어요. 그러나 불확실한 전쟁 상황에서 대출은 위험하다며 거절당했어요. 은행을 나오다 자신의 대출상환이 잘 정리되었는지 알아보려고 은행직원에게 영수증을 보여주자 그 순간 은행직원이 외쳤어요. "바로 당신이군요. 중공군이 서울에 들어오기 몇 시간 전에 빚을 갚은 사람이 바로 당신, 당신의 이야기는 은행가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당신을 은행장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은행장은 최태섭 장로를 알아보고 그의 손을 잡고 말합니다. "당신 같은 정직한 사람이 있으니 우리나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대출사정을 듣고는 무담보로 2억을 융자해 주었어요. 그리하여 최장로는 대출 받은 돈으로 원양어업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돈을 벌어 한국유리를 창업하게 된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겠다고 뜻을 세우고 살 때 길이 열렸고 복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정직하게 살아야 겠다, 진실하게 살아야 겠다, 뜻을 세우세요. 그래야 잘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뜻을 세우는 걸 봤어요. 나는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 참 위험한 발상입니다. 어리석은 뜻이예요. 파멸로 가는 길이예요. 여러분, 내 영혼을 복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뜻을 세우며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가 결혼직 후 가끔 부부싸움을 했는데 그 때마다 속으로 이혼을 해 야하나? 하며 갈등을 하였습니다. 뿌리까지 흔들렸던 것이지요. 한번은 부부싸움을 하고 난 뒤에 맨발로 쫓겨 난적이 있어요. 아내가 힘이 세니 저를 추운 겨울에 쫓아낸 거지요. 20대 후반인지라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저는 결혼에 회의가 들곤 했지만 아내는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싸움의 본질만 생각했어요. 지금생각하면 저보다 아내가 지혜로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부부싸움을 마치고나면 언제나 아무일 없었던듯 제자리로 돌아오더라구요. 그 때 저는 부부싸움이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부부사이가 더 가까워지는 과정임을 알았어요. 그래서 결심을 했지요. 앞으로 부부싸움을 하면 근본이 흔들리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겠다. 그리고 부부싸움 후에 바로 풀어 버리겠다고 뜻을 세웠어요. 그렇게 뜻을 세우고 나니 그 이후부터 부부싸움을 하여도 흔들리지 않았고 싸움도 금방 풀렸어요. 제가 이 뜻을 세운 후에 우린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별로 싸운 기억이 없어요. 여러분, 부부싸움을 해도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뜻을 세우면 부부싸움이 금방 풀리고 결혼 생활이 행복해집니다.
지금도 부부싸움을 하면 근본이 흔들리는 부부들 있나요? 그렇담 한번 뜻을 세워 보세요. 오늘 저녁에 음식을 잘 차려놓고 자녀들 보는 앞에서 아예 서약식을 하세요. 우린 어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근본은 흔들리지 말자. 어떤 경우에도 가정을 깨지 말자. 이렇게 뜻을 세우면 행복해 집니다. 이런 뜻을 세우며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적용]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고 뜻을 정하면 생각이 단순해집니다. 머리 쓸 것도 없어요. 하지만 뜻을 정하지 않고 살면 항상 우왕좌왕갈팡질팡합니다. 신앙의 뜻을 세우지 못하면 주일날에도 교회를 갈까 다른 곳을 갈까 고민합니다.
[권면]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고 살겠다고 뜻을 정해보세요. 갈등하는 마음이 떠나고 생각이 단순해집니다. 또 선한 마음으로 살겠다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에 제일 우선으로 살겠다고 뜻을 세워 보세요. 그러면 갈등, 고민이 줄어듭니다. 오히려 삶이 행복해지고 가정이 평안하고 신앙이 성장합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죄를 짓지 않겠다 뜻을 정하세요. 그러면 죄를 물리치는 일에 강력한 힘이 생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렇게 뜻을 세운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이런 사람을 잘 살게 만드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다니엘처럼 뜻을 세운 인생길을 걸으시며 축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I. 뜻을 세우고 살면 분명 유익합니다만 때론 그 뜻이 도전 받을 때가 있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뜻을 세웠으나 스스로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사울왕은 자기 사위 다윗이 자신보다 인기있는 것을 알고 시기가 나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다윗이 자기를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살려준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자 사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아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너를 헤치려고 하지 않으마. 바른 뜻을 세웁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는 자신이 세운 뜻을 버리고 다시 다윗을 죽이려는 흉악한 흉계를 꾸밉니다. 이런 태도가 몇 차례나 반복되었습니다. 뜻을 세웠으나 스스로 무너트리고 스스로 세웠으나 또 무너트리며 세월, 에너지를 낭비하며 졸렬한 인격을 드러냈어요. 뒤죽박죽 인생을 살다가 불행하게 끝맺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한번 뜻을 세웠다가 후퇴하면 시작하지 아니한 만 못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뜻을 세웠으나 외부 환경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마음이 약해져서 세운 뜻을 무너트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뜻을 세우고도 오히려 뒤에 가서 더 큰 고통을 겪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며칠간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참 우울하였어요. 항상 병원을 심방하며 남을 위로만 하였지 제가 직접 남의 손에 이끌려 병원신세를 지게 되자 마음이 참 괴로웠습니다. 목회도 그만두고 산속에 들어가서 살고 싶은 생각도 들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제 마음이 무척 연약했고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보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마음이 서서히 변합니다.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힘을 주신다." 이런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다윗의 상황을 보면서 큰 힘을 얻었는데, 다윗은 고난을 겪으며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로 작정하였어요. 시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이 말씀을 읽으며 아무리 어려워도 다윗처럼 항상 기뻐하고 항상 행복한 마음을 갖기로 뜻을 세웠습니다. 저는 그 때에 깨달은 것, "아하 사람은 환경에 따라 행복한 마음을 가질 때도 있는가 하면 불행한 마음을 가질 때도 있구나... 난 결정을 해야겠다. 앞으로 어떤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난 항상 행복한 쪽을 선택해야 겠다" 결심을 했어요. 여러분 참 아름다운 결정이지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결정하고 나니 그 이후로 예전처럼 행복한 마음이 찾아왔어요. 할렐루야!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선한 뜻을 버리지 마세요. 한번 세운 뜻을 높이 세우시길 바랍니다.
현대인의 가정이 해체되는 이유는 “당신만을 사랑하겠노라”하며 세운 거룩한 뜻을 핑계대며 무너트리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니엘처럼 뜻을 세워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랑을 허물지 않겠다. 어떤 경우에도 죄를 짓지 않겠다. 어떤 경우에도 사단에게 끌려다니지 않겠다. 이런 거룩하고 높은 뜻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환경에 지배받으면 자신을 합리화하며 세운 뜻을 꺾어요. 기분에 따라 세운 뜻이 왔다갔다 합니다. 어제는 정직했는데 오늘은 정직하지 못합니다. 어제는 순수했는데 오늘은 타락한 모습입니다. 사람이 보는데서는 괜찮은데 사람이 없는 데서는 형편없는 인격이 되요. 여러분, 이렇게 믿을 수없는 사람이 되는 이유가 뭐예요? 신앙에서 나오는 원칙, 뜻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원칙없이 분위기에 따라 결정하기에 그래요. 그러나 우리는 신앙에서 나오는 거룩한 원칙, 뜻을 세워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기쁘시게 하겠다 이런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자녀들도 이런 수준의 높은 뜻을 세우고 지켜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자리가 잡혀요. 신앙의 자리가 잡히고 삶의 질서가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이런 가정이 훌륭한 가정이예요. 이런 가정이 신앙의 명문가정인 것입니다. 세운 뜻이 도전을 받아도 강하게 지켜 나가면 더욱 빛이 납니다. 이런 성도, 이런 가정을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이런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세운 뜻이 도전을 받아도 이겨내면 더 큰 축복이 온다.
[본문]다니엘은 음식으로 인한 뜻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이 있는 곳을 향하여 하루 세 번 기도하며 살겠다고 뜻을 세웠습니다. 이 뜻은 우상이 왕성한 곳에서 자기 신앙을 잊지 않고 신앙대로 살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런 경건한 신앙생활이 정적들에 의하여 발각이 되어 왕에게 고해집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총애했는데 그런 보고를 받고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 굴 속에 집어 넣습니다. 다니엘에게 위기가 닥친 거예요. 기도하던 것을 멈추거나 신앙생활을 멈추면 살 수 있지만 다니엘은 자신이 세운 신앙의 뜻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죽으면 죽었지 자신이 세운 뜻을 꺾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그의 견고한 신앙이 있어요. 왕은 다니엘을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이 사자굴 속에 집어넣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어요. 이튿날 새벽에 신하들과 함께 사자 굴에 가보니 왕은 굶주린 사자들이 온순하였고 다니엘도 살아 있었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봉하심으로 다니엘이 조금도 상치 아니하였다. 할렐루야! 왕이 감동을 받아 다니엘을 끄집어내고 왕까지 하나님을 믿는 경사가 생겼어요. 세운 뜻이 도전에 직면했지만 오히려 다니엘은 강한 믿음으로 이겨냈고 하나님은 이런 다니엘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은 심지가 견고한 자를 축복하십니다. 보세요.
이사야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정한 사람,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은 평강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무서운 권력의 시절인 박정희 대통령 당시에 한번은 별자리들을 위한 회식이 있었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은 장군 한사람 한사람 자리를 돌며 술을 따라주는데 황영시 장군에게 술을 따를 차례가 돌아오자 황장군이 말합니다. “각하, 각하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신앙양심상 술을 마시는 것만큼은 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 회식자리는 모두가 얼어붙는 듯 고요해졌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이 목소리를 높이며 “황장군, 그래도 내가 주는 것이니까 마셔!” “각하 술을 마시는 것은 제가 모시고 계신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입니다. 그 명령만은 거두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박대통령은 “뭐야?”하며 기분이 몹시 나쁘다는 듯 그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있던 장군들은 한 마디씩 남기며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각하의 성질 건드려 놨으니 자네는 옷을 벗겠네!” “황장군 왜 이렇게 고지식한가? 나도 교회 다니는 안수집사야, 이런 곳에서 한잔 한다고 해서 신앙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 날 밤 황장군은 가족들을 모두 모아 놓고 저녁에 있었던 일을 나누고 군복을 벗을 때가 되었다며 온 가족이 마음을 다지며 기도하였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청와대에서 호출을 하였습니다. 박대통령은 다시 기회를 준다고 했지만 황장군의 대답은 똑 같았습니다. 그러자 박대통령이 걸어오더니 어깨에 있던 소장 계급을 떼어버리더랍니다. 그리고 준비해 둔 중장 계급장을 달아주며 “황장군,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으로 나와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해주게!”
황장군은 육군 역사상 처음으로 진급 발표도 없이 곧 바로 중장으로 진급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세운 뜻을 끝까지 지키는 신앙인을 인정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면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거룩한 뜻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험하고 고통스러운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로 기도하였어요.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멀게 하소서. 하지만 그는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따르게 하소서. 결국 주님은 자신이 세운 높은 뜻을 그대로 따라가는 믿음을 갖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처참한 죽음을 택하여 갔습니다. 한번 세운 뜻을 죽음의 두려움을 직면했지만 끝까지 실천하였고 그 은혜로 인하여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얻은 줄 믿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베드로는 한 때 높은 뜻을 세운 사람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주님 곁을 지키겠습니다.”하고 베드로가 뜻을 높이 세웠습니다. 주님께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어요? 하지만 그날 밤 죽음의 공포가 그를 엄습할 때에 그는 자신이 세운 뜻을 무너트리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부인하고 배반하였던 것이지요. 베드로는 자신이 스스로 세운 뜻을 스스로 무너트린 장본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은 제자 될 자격이 없어 하며 주님을 떠났어요. 제자의 삶을 떠났어요. 그러나 보세요. 그런 베드로를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갈릴리 바닷가에 찾아오셨잖아요? 숯불을 피워놓고 생선과 떡을 구워놓고 베드로를 기다렸고 껄끄러운 마음으로 다가온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을 물으시잖아요?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치라 하십니다.” 다시 제자의 삶을 살 기회를 주시는 것이지요. 꺾인 뜻 다시 세워 승리의 길을 가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내민 손을 붙들고 다시 뜻을 세우고 멋진 인생길 승리의 길을 축복 속에 걸어갔습니다. 주님은 뜻이 허물어진 인생을 지금도 찾아오셔서 다시 세우라고 그리고 축복의 인생을 살라고 손을 내미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뜻이 허물어져 힘들어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다시 뜻을 세우고 일어서고 싶으신 분이 있습니까? 새롭게 하시려고 찾아오신 주님을 붙들고 일어나 다시 거룩하고 멋진 뜻을 세우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주신 기회 다시는 놓치지 마시고 승리의 길을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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