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22
필요성, 중요성, 해결책을 찾아라
“한 의가 나타났으니”
로마서 3:18-24
개요
1. 인간은 죄 아래 놓여있는 운명이다.
2. 그러나 온 인간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난다.
3. 이 의를 믿음으로 받을 때 의로워지고 구원이 이뤄진다.
[I. 필요성-죄 아래 놓여 있는 인간의 운명]
[죄의 결과]
인간이 살아가면서 해결할 수 없는 3가지가 있습니다. 죄와 죽음, 고통입니다. 이 세 가지는 연관이 있어요. 죄로 인하여 고통이 왔고 죄로 인하여 죽음이 왔습니다. 죄가 원인이에요.
인터넷에 한 여성이 글을 올렸는데 내용인즉 그렇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다가 들통이 났는데 남편이 빌기에 다짐을 받고 용서해 주었답니다. 그런데 남편이 못된 버릇을 끊지 못하자 아내는 복수하겠다며 맞바람을 피웠어요. 부부가 서로 으르렁 거리며 사는 동안 청소년기의 남매도 가출하였습니다. 가정이 너무 쉽게 무너졌어요. 이 글을 읽고 어떤 분이 토를 달았어요. “당신들 집안 콩가루 집안이 되었군...” 단란했던 가정에 행복, 사랑, 웃음이 사라졌어요. 다만 원망, 증오, 후회, 고통, 반항뿐이었어요.
남편 한 사람이 죄를 가져오자 아내도 자녀들에게도 죄가 들어왔고 죄에 얽혀 고통이 임했으며 죄로 인하여 가족이 풍지박살 났어요. 여러분, 한번 죄에 빠지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정신 병원에 들어오는 사람 중에 지은 죄로 인하여 괴로워하다가 잠도 못자고 헛소리 하다가 병원엘 들어오는 사람이 있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었어도 죄지은 생각 때문에 행복하지 않아요.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 때문에 인생의 살맛, 기쁨도 상실한 채 살아가는지 몰라요. 죄는 인격을 파괴하고 행복을 앗아가며 심지어 영혼을 말살시킵니다. 그것만이 아니에요. 죄가 마음의 평강, 기쁨을 앗아가요. 자신감도 떳떳함도 사라지게 합니다. 얼굴을 어둡게 만들고 선을 행할 용기도 나지 않게 만들어요. 여러분, 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죄의 힘이 얼마나 센지 한번 죄를 지으면 죄의 노예가 됩니다. 바람 핀 남편이 그러더랍니다. “아무리 끊으려고 해도 죄란 놈이 자꾸 부르는데 거부할 힘이 없더라.” 가만히 있으면 머리 속에 죄지을 생각만 나고 죄에 끌려갑니다. 죄를 이길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죄는 원죄와 자범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원죄란 원래부터 있는 죄를 말합니다. 어린아이들을 보세요. 가르치지 않았지만 친구의 장난감을 보고 빼앗아요. 왜 그러느냐 몸 속에 죄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에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이 말은 아담이후로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죄의 피가 흐른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온 인류에게 죄의 피가 강물처럼 흘러요. 그래서 아이들이 배우지 않아도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 원죄 때문에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지어요.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거에요. 이 원죄 위에 스스로 짓는 자범죄를 쌓아요.
여러분,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깊고도 큰 죄를 짓고 살아가는지 오늘 성경은 증언합니다. 10절을 보세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죄로 인해 마음이 캄캄하여 깨닫는 것도 없어요.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절을 보세요.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이것은 마음이 부패함을 말하는 겁니다. 모두가 마음이 부패했다는 겁니다. 그 입술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진실을 말하기 보단 거짓을 일삼아요. 여러분, 인터넷을 보면 사람들의 입이 얼마나 더러운가 또 생각이 얼마나 추악한가를 알 수 있어요. 자기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하여 온갖 비방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면 남을 욕하고 자신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자연스러운지요. 인간은 타락의 극치를 가고 있어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15절에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여러분, 선한 일을 하는 데는 미적거리면서도 남을 험담하고 욕하는 데에는 얼마나 빠른지 아세요? 전화가 불이 납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갑니다. 이렇게 인간은 죄짓는 데에 민첩해요. 그 결과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파멸과 고생의 길을 간다.
선을 행하기보단 악을 행하려는 태도, 착한 말을 하기보단 추한 말을 하려는 근성, 사람을 세우기보단 허물려는 심리, 남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꼬인 마음, 남이 잘못되면 시원하게 느끼는 감정등은 모든 것이 죄성 때문입니다. 이렇게 죄를 지으며 살다보니 무슨 길을 알지 못하였나요? 오늘 말씀을 보니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어요. 죄의 길을 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평강을 잃어버렸어요. 마음이 어두워졌고 양심이 마비되었고 영혼이 캄캄하여 하나님조차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죄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요. 죄가 인간의 삶의 도처에 깔려 있어요. 죄없인 살 수 없게 되었어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어요. 회복불능상태입니다. 아무리 선한 생각을 하려해도 선한 생각을 할 수 없으며 타락한 생각, 타락한 행동만을 자연스럽게 따라가요. 이 죄의 결과에 대해 성경은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를 지은 결과는 구원이 아니에요. 죽음뿐이었어요. 죄로 인하여 고통이 왔고 죄로 인하여 죽음이 왔습니다.
[죄를 벗어나려는 인간의 노력]
인간은 이렇게 죄로 인하여 고통 죽음에 이르게 되자 죄로부터 벗어나려고 철학적 사유를 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려했고 착한 일을 하려했어요. 불교에서는 큰 공덕을 쌓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죄가 사하여지고 극락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철 스님은 불교가 낳은 가장 위대한 스님입니다. 그는 결혼 직후 처자식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도를 닦았는데 도를 닦는 곳에 울타리를 치고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16년 동안 솔잎가루와 쌀가루만 먹으며 수행했어요. 8년 동안 앉아서 잠을 자며 수행했어요. 그런데 그가 수행한 결과에 대한 고백을 보면 자기는 사람을 속이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 죄가 수미산 보다 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은 죄로 인하여 지옥 간다. 했어요. 죄가 크니 마음이 평안할 리가 없지요. 죄를 끊어버리려 했지만 죄가 더 생생하게 생각났어요. 결국 불안한 마음으로 난 지옥간다 하며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이 분에게서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자기가 죄인이란 사실을 깊이 인식했어요. 자기가 죄인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사람에 비하여 도를 잘 닦았어요. 그러나 그가 고행하며 평생 도를 닦았지만 자신의 죄를 해결하지 못했고 죄로 인하여 지옥 갈 것을 두려워했어요. 여기에 그의 도의 한계가 있고 문제가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도 율법을 지키며 죄로부터 벗어나고 구원 받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613가지 율법을 지키려 하였어요. 가령 거짓말 하지 말라 이 말씀을 지키려 했어요. 그러나 자신이 거짓말 하는 존재라는 것만 확인하게 되었어요. 율법을 통하여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 하였으며 자신에 대하여 더 큰 절망, 더 큰 좌절을 느꼈습니다. 죄의 권세를 깨트릴 힘도, 죄를 거부할 능력도, 죄로부터 자유 할 수도 없는 존재이며 다만 죄의 흔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할 존재임을 알게 되었어요. 19절 20절을 보세요. 우리는 율법을 통하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었으며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하나도 없도다. 율법으로는 한사람도 구원받을 수도 의로워질 수도 없어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백했어요. 오호라 누가 나를 이 사망에서 건져내랴!
[II. 중요성-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그런데 오늘 말씀은 절망스러운 탄식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21절에서 소망의 말씀이 나타납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할렐루야! 율법은 인간을 고발했어요. “너는 죄인이야 너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야.” 율법이 사람을 절망케 할 그 때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어요. 거룩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으로부터 한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 의로움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첫째, 인간이 죄를 끊어버리는 의입니다. 율법이나 다른 종교는 죄의 사슬을 끊지 못했고 죄의 노예된 신분을 해결하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의는 죄의 강한 사슬을 끊어버렸어요. 그리고 죄의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는 의였어요. 둘째, 인간이 지은 죄의 흔적을 씻어내는 의입니다. 죄로 인한 상처를 씻고, 주름진 마음을 펴내고 지은 죄로 괴로워하는 마음을 평안케 하는 의입니다. 셋째, 죄인된 인간을 죄없다 인정하시는 의입니다. 이미 죄의 흔적을 씻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죄없다고, 의인이라고 선언하시는 의입니다. 착한 일을 해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를 씼어주셨기에 의로운 자로 선언하신 거에요. 어제까지는 죄인이었으나 하나님의 의가 선포된 순간부터 이제는 죄 없는 자가 된거에요.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구원 할 수도 스스로 죄로부터 깨끗케 할 수도 없음을 아시고 인간의 죄를 씻어내는 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 의를 어떻게 나타내셨느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시고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게 하시며 이루셨어요. 예수의 보혈로 이루신 것이지요. 24절을 보세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했습니다. 여기서 구속이란 대속이란 단어와 같은 맥락입니다.
한 부상당한 노예가 죄를 짓고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에 한 어진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어여삐 여겨 값비싼 돈을 지불하고 그 노예를 사서 그를 치료하여 준 후에 말합니다. 너는 이제 자유의 몸이니 가라!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나요? 노예가 치료받고 자유의 몸이 될 자격이 없지만 순전히 착한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의 긍휼로 인하여 신분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었어요. 바로 이렇게 값 주고 사서 자유케 하는 것을 구속 혹은 대속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의 피값으로 우리를 사서 구원하셨어요. 인간이 죄로 인하여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신 것이지요.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우리는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어요. 다만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에게 이 의로움, 구속의 은혜를 나타내셨어요.
대가없이 받는 것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은혜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러주셨고 그리고 의로워졌다고 선언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은혜요 선물입니다.
이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 은혜로 말미암아 인간은 의롭다 하심을 얻었어요. 죄는 분명 무섭고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죄의 사슬을 끊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 있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이 보혈로 끊지 못할 사슬이 없으며 씻지 못할 죄가 없으며 깨끗케 하지 못할 허물이 없습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의 죄도, 정욕에 붙들린 사람의 죄도, 세상의 악한 것에 사로잡힌 사람의 죄도, 죄짓지 않고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의 죄도, 허탄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의 죄도, 마귀에게 눌림을 받는 사람의 죄도 십자가의 보혈은 끊지 못할 죄가 없어요. 그 어떤 것도 자유케 하는 힘과 권세가 있어요.
이 하나님의 의가 우리 속에 임할 때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덧입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이 이런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복된 영혼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II. 해결책. 하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게 하려면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내 것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를 나타내셨지만 이 하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게 하려면 22절을 보세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믿는 사람에게만 이루어졌어요. 우리가 예수의 보혈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것이 되는 거예요. 믿음이 그렇게 만듭니다.
백부장의 종이 아프자 백부장이 주님 앞에 나아와 말합니다. 주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다만 말씀만 하셔도 나을 줄 믿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그 즉시 하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이 고쳐 주신 거에요. 여기서도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봅니다. 병이 낫는 것도 믿음이 있어야 되듯이 의로워 지는 것도 믿음이 요청됩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자녀를 얻는 응답을 받은 것은 믿음이었어요. 행위로 의로워진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워진 것이었어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자신의 죄를 씻어내기 위하여 스콜라 산타(Scola Santa)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계단마다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 행위는 죄로부터 구출받기를 원하는 영혼의 애타는 심정을 표현하는 의식이었어요. 그러나 그는 이같은 고행을 통해서 죄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무릎을 풀고 다시 그 계단을 걸어서 내려왔어요. 그는 더 큰 고민에 빠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로마서를 통하여 사람이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못박히신 우리 주님을 단지 믿음으로, 그 피가 나의 죄를 씻기 위하여 흘리신 보혈임을 믿을 때에 의로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주님 보혈을 믿을 때에 영혼이 구원받음을 알았어요. 마침내 그는 예수의 보혈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비로소 마음에 평화를 얻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던 사람이 구원받는 길은 오직 던져진 밧줄을 꼭 붙드는 거에요. 구원의 밧줄을 잡고만 있으면 상대가 줄을 당겨 살아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밧줄을 던지셨을 때 믿음으로 잡기만 하는 되는 겁니다. 지금도 저와 여러분에게 구원의 밧줄을 던지시며 그 밧줄을 잡으라고 말씀하셨어요. 구원을 위하여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구원의 받줄을 믿음으로 단단히 잡고만 있으면 우리의 영혼을 의로운 자로 만드시고 죄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거예요.
실제 구원의 줄을 죽기 직전에 꼭 붙들어 구원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매달렸을 때에 같이 매달렸던 한 강도는 예수님을 향해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강도는 그 강도를 꾸짖고 난 뒤에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마지막 순간에 구원의 끈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꼭 붙들었습니다. 그 사람, 죄용서 받고 구원받은 줄 믿습니다.
저는 강의 할 때마다 칠판에다 빼곡히 글을 씁니다. 다 썼으면 또 깨끗이 지웁니다. 이때 마다 저는 주님의 보혈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죄를 지어도 주님의 피가 우리의 허물을 매일 매 순간 지워주시겠지 생각하니 한 없이 고마워 어떤 때는 눈물이 흘러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의지하면 죄사함 받고 의로운 자로 세워짐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구원의 은총 주님의 보혈이 내 영혼을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하였음을 믿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받은 구원의 은총에 보답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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