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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실하셨다" (요13:1)
박영재 2009-10-29 추천 0 댓글 0 조회 2618

2008.10.12.
필요성, 중요성, 해결책을 찾아라

“그는 진실하셨다”

요한복음13:1

[1. 문제제기: 진실의 필요성-진실하지 못한 인간]

초등학생이 엄마와 함께 예술 관람을 갔습니다. 엄마는 행사장 입구에서 딸에게 “몇 살이냐고 물으면 6살이라고 대답하라”고 합니다. 아이는 “왜요?” 물었지만 엄마는 “그냥 그렇게 대답해!” 합니다. 딸은 입구에서 나이를 묻는 질문에 “6살이요!” 하고 통과를 합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난 8살인데...”


세상 사람들이 몇 푼의 이득 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수치를 모면하거나 손해를 면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합니다. 문제 발생을 억제하거나 허풍을 떨거나, 약속을 파기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합니다. 사실을 왜곡시키거나 본질을 흐리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 땅은 사람들의 거짓말로 만연되어 있어요. 거짓말, 거짓행동, 거짓 마음이 도처에 가득합니다. 이 거짓은 어디로부터 옵니까? 스캇 펙은 그의 저서 “거짓의 사람들”에서 모든 거짓은 사단으로부터 옴을 가르칩니다. 악마로부터 오는 것이지요. 보세요. 사단의 힘이 얼마나 센지 도처에 거짓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요.


성경에 보면 사단에 넘어간 거짓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집을 팔아 헌금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팔고나니 욕심이 생겨 일부를 감추고 베드로에게 “이것이 전부요.”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두 부부를 그날로 데려가셨습니다. 욕심이 약속을 파기했고 거짓을 불러일으켰으며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거짓을 싫어하십니다.


사람들이 병환 중에 있을 때 “하나님 낫게만 해주시면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습니다.” 합니다만 회복된 후 엉터리로 삽니다. 거짓말 한거지요. 수입이 없을 때 “하나님 수입을 주시면 헌금생활 잘 하겠습니다.”합니다만 훗날 수입이 생겨도 헌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거짓말 한 거지요. 그 대신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으로도 저를 축복해 주세요...” 여러분, 축복해 달라고 간구하기 전에 거짓말부터 고쳐야지요. 그렇잖습니까? 어떤 성도가 거짓말로 돈을 벌었는데 양심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용서받고자 헌금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안 목사님은 돈을 돌려주며 그랬답니다. “하나님이 헌금을 기쁨으로 받으시게 하려면 먼저 거짓말을 중단하십시오. 그리고 진실하십시오...”


진실한 사람, 진실한 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말이 진실하고 생각이 진실하고 뜻이 진실하고 모든 것이 진실하면 좋을텐데... 여기에 아쉬움이 있어요.


진실하지 않을 때 양심이 마비됩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생기질 않아요. 고통, 실망, 불신이 생깁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파괴됩니다.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거나 찬양을 하거나 예배를 드리거나 헌신을 하여도 마음이 기쁘질 않습니다. 진실하지 않으면 사랑도, 우정도, 사람과의 관계도 발전할 수 없어요. 모든 것에 문제를 가져와요. 그래서 여러분, 진실해야 해요.



[2. 진실의 중요성-예수님의 진실의 본질을 밝힘으로서 긍정효과를 얻는다]

진실하면 유익이 많아요. 장양창씨는 그의 저서 “진실의 힘”이란 책에서 진실은 사람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거짓은 불신을 주지만 진실은 믿음과 신뢰를 줍니다. 거짓은 사람관계를 깨트리지만 진실은 관계를 튼튼하게 만들어요. 거짓은 늘 불안합니다. 얇은 얼음판에 서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진실은 단단한 바위위에 서 있게 합니다. 겸손한 사람을 보세요. 진실합니다. 순수한 사람을 보세요. 진실합니다. 진실이 이렇게 좋은 겁니다. 그러나 진실에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진실을 밝히면 상대에게 자존심을 자극하거나 아픔을 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진실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진실은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 중에 최고의 자산입니다. 여기에 진실의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생애를 연구하면서 깜짝 놀란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단 한 번도 거짓되거나 가식되거나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습니다. 말, 행동, 의지, 생각이 진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려함이라. 이 말씀을 하시고 난 후나 하기 전이나 항상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의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섬기겠다고 작정하신 것을 그대로 지키셨어요. 사람들은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손해본다싶으면 말을 뒤집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주님은 죽음의 위기에 닥쳤어도 말씀한대로 지키셨어요. 여기에 주님의 진실함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대제사장의 처소에 끌려갔을 때에 사람들 앞에서 대제사장이 묻습니다.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자, 여기서 아니라고 하였으면 풀려났을 겁니다. 하지만 주님은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셨어요.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사실을 사실대로 밝혔어요.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거짓이 없으신 주님, 여기에 주님의 진실함이 있습니다. 돈 몇 푼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일삼는 인생들과는 얼마나 다른지요. 그래서 고개가 숙여집니다.


미국의 텔레비전 전도자인 지미 스와거트목사님이 있습니다. 그의 전도집회는 수천 수만명이 몰려들곤 했으며 아프리카의 집회에선 수십만 군중이 모이곤 했어요. 저는 미국에 있는 동안 이 분의 부흥집회인도를 즐겨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목사님에게 여성편력이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말이 들립니다. 중재위원 목사님들이 성도들과 텔레비전시청자 앞에서 “목사님, 여성편력이 사실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사실 그 자리는 목사님에게 변명기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짧고 담백하게 말합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아내에게 죄를 지었으며 사랑하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후로 모든 직함을 내려 놓겠습니다.” 하고 모든 직함에서 떠났어요.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어요. 수천억의 재산과 예산을 집행하는 권한을 포기했어요. 그리고 사역의 현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성도들은 그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성도들은 그를 다시 받아들였어요.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요. 당당합니다. 새롭게 사역을 시작하며 또 다시 미국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는 자신에게 닥칠 손해, 모욕, 수치를 알면서도 진실을 밝혔어요. 이러한 진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어요. 여러분, 진실할 때 솔직해지고 담대해집니다. 진실할 때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며 용서를 불러옵니다. 여기에 진실의 힘이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하길 원하십니다. 솔직한 사람이 되길 원하세요. 진실한 사람을 축복하시고 진실한 사람의 앞길을 여십니다. 잘못했으면 인정할 줄 아는 담백한 사람이 되십시오. 수치스럽다할지라도 진실함을 보이십시오. 사실을 왜곡하지 말고 시시하게 변명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더 당당해지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됩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지요. 폭넓게 생각하면 자신을 부인할 베드로와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다 들 죽음이 두려워 흩어질 제자들을 아셨던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절 말씀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 배반할 것을 아시면서도 자기에게 칼을 겨눌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주님이 배반하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주님의 사랑하겠다는 결단이 그 마음이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제자를 사랑하되 진심으로 사랑하였기에 배반의 칼날 앞에서도 사랑이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겁니다. 진실은 변질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진실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있어서 조건을 달거나 수틀리면 변심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나요? 진실의 문제입니다. 사랑하겠다던 결심, 결단에 진실의 무게가 실리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진실한 마음이 없이 사랑하니 오래가지 못하고 변질되는 거지요. 주님은 사랑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진실하셨어요. 그래서 변질이 없었어요.


여러분, 한번 사랑하겠다고 말했으면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섬기며 살겠다고, 충성하며 살겠다고, 겸손하게 살겠다고 한번 말했으면 끝까지 지키십시오. 진실하게 살겠다고 결단했으면 끝까지 진실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 두 번씩이나 번복해서 말씀하실 때가 많았어요. 요한복음6:47에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또 요한복음 8:51에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그러고 보면 예수님은 진실에 대하여 관심이 많으셨어요. 무슨 말씀을 하실 때 진실한 말임을 강조하려고 애를 쓰셨어요. 사람들은 책임지지 못하면서 쉽게 말하지요. 진실의 무게가 실리지 않아서 그래요. 그러나 주님의 모든 말에는 진실의 무게가 실렸어요.


백 여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육백평정도의 건물을 이십억 빚으로 지었어요. 성도들이 빚을 갚아나가기로 서약했는데 짐이 무겁자 중진들은 겁을 먹고 하나둘 떠났습니다. 재정형편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교회가 경매로 넘어가자 성도들의 마음은 더 심란해진 가운데 교회문제를 해결하자며 새벽기도하러 나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어요. 평소에 조용하던 분이 새벽예배에 참석하면서 어느날 집을 팔아 삼억원의 헌금을 드렸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던 성도들이 큰 감동을 받았고 십시일반으로 헌금에 동참하더니 위기를 넘겼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거지요. 지금은 성도들이 신나게 신앙생활합니다. 얼마 전 담임목사님의 활짝 웃는 사진이 큼지막하게 신문에 나왔어요. 참 좋아 보이더라구요. 한 사람의 진실한 마음과 성도들의 진실어린 눈물이 교회를 살렸고 목회자에게 위로를 주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지방에 있는 모 교회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제정적인 문제는 믿음 있는 한 사람의 헌신만 있어도 해결됩니다. 문제는 진실함이 있느냐는 것이지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이 분처럼 한번 작정한 것을 지키는 진실한 헌신이 있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들어 쓰시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집사님이 되십시오. 필요할 때 변명하며 피해봤자 더 추해집니다. 그렇잖습니까? 주님이 십자기 위에서 죽으시겠다고 한번 말씀하시고 이런 저런 변명을 내세우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다면 여러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말한 것을 지키는 사람, 상황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길 원하세요. 믿을 만한 사람, 진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말로는 주님을 사랑한다면서 마음에선 실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지요. 마음과 말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그렇다는 겁니까?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그렇다는 겁니다.

성경주석의 권위자이신 박윤선박사님을 잘 아시지요? 한번은 박박사님이 지나가시는데 학생들이 인사를 하더랍니다. 그런데 박박사님이 인사를 받고 가시다가 다시 와서 하는 말씀, “학생들, 자네들의 인사를 내가 건성으로 받았네. 미안하네. 앞으론 이런 일이 없도록 할 걸세.” 가식적으로 인사를 받았던 것이 마음에 걸려 다시 와서 사과하였던 것이지요. 인사를 다시 받은 신학생은 박박사님의 진실함에 오랫동안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순간도 겉과 속을 다르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셨던 분이었습니다. 여기에 그 분의 진실이 있어요. 진실이 있는 곳에 감동의 여운이 오래갑니다.


주님의 말씀은 진실이었어요. 주님의 눈물은 진실이었어요. 주님의 태도는 진실그 자체였어요. 여러분,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거예요. 이런 삶을 살아야 쓰임 받는 겁니다. 여러분, 주님처럼 진실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진실한 삶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진실해지는 방법-하나님을 상대하는 믿음을 소유할 때 가능하다]

여러분, 주님의 진실의 힘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주님의 생각, 마음, 의지를 진실하도록 만든 힘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끝까지 진실하셨던 그 힘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요한복음8:29절을 보세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주님은 항상 아버지 하나님을 상대하셨어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숨을 쉬셨고 아버지 앞에서 말씀하셨고 아버지 앞에서 행동하셨습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하셨어요. 자신의 머리털 까지 세신바되고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있음을 항상 의식했어요. 이런 믿음은 거짓 말, 거짓 행동을 할 수가 없게 만들었어요. 우리 주님은 거룩하시고 진실하시며 선하신 하나님이 항상 자신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사셨어요. 이런 하나님을 상대하는 믿음으로 사셨기에 주님은 끝까지 진실 할 수 있었고 끝까지 신실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끌려갔을 때에 젊고 아름다운지라 주인집 아내가 간통하자고 졸라댔습니다. 요셉은 피 끓는 젊은이라 정욕도 채우고 노예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길이 주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요셉은 진실했어요. 요셉은 간통하자고 졸라대는 주인의 부인을 뿌리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리이까?” 죄의 유혹의 현장에서도 요셉은 자신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했습니다. 하나님을 상대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기에 그가 진실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상대하는 믿음으로 살았기에 그는 언제나 진실할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 성도가운데 이런 성도를 보았어요. 교회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신앙이 참 잘 자랍니다. 기도도 잘 하고 예배드리는 태도와 성경공부 태도가 진지합니다. 교회의 여러 행사에 열심으로 참여합니다. 놀라울 정도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오래다닌 사람 중에는 거만하여 교회 행사를 우습게 생각하고 협조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요. 그런데 이 성도는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집사님, 아무것도 모르니 잘 좀 가르쳐 주십시오. 합니다. 얼마나 순수합니까? 이러니 신앙이 잘 자랍니다. 가만히 보니 한가지 뚜렷한 특징이 보이더라구요. 그 분은 매사에 진실했어요.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성경공부에 임하거나 예배를 드리는 것도 진실했어요. 그러니 순수할 수 밖에요.

    그런데 한번은 어떻게 그렇게 진실할 수 있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분 왈 “목사님, 하나님이 저를 보고 계시다고 생각하니 진실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제 생각을 아시고 마음을 아시는데 어떻게 진실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분의 진실의 힘은 바로 하나님을 의식하는 믿음때문이었어요. 바로 이 믿음이 그를 진실하게 만들었고 그의 영혼을 아름답게 성장시켜 갔던 거예요.


거짓의 힘은 사단에서 옵니다. 사단은 우리가 사람만을 상대하며 속이라고 부추깁니다. 여러분, 사람만을 상대하며 사람을 속이는 것 쉬운 일이예요. 사람 앞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본질을 흐려놓는 것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느 것도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지요. 하나님 앞에서는 다만 진실만 통하고 진실만 인정받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상대하는 믿음의 사람은 진실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상대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훗날 우리의 삶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마십시오. 진실의 힘을 키우세요. 하나님을 상대하는 믿음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4.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상대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나?]

어떤 사람이 하나님만을 상대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나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때 가능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애쓸 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때 가능합니다. 신앙생활이 깊어지면 하나님을 상대하는 신앙이 되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집니다. 결국 무엇에든지 참되고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덕을 쌓게 됩니다. 말, 생각, 마음, 의지가 항상 깨끗합니다. 참된 경건, 진실함에 이르면 거짓은 멀어집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짓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진실함만 남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바로 이렇게 살길 원하세요. 무엇에든지 참되고 무엇에든지 진실하고 무엇에든지 겸손하고 무엇에든지 덕을 세우는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이후부터 거짓의 껍질을 벗고 진실의 옷을 입읍시다. 진실의 뿌리를 깊숙이 내립시다. 그리고 진실의 힘을 키웁시다.


“그는 진실하셨다.” 오늘 이 말씀이 오랫동안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 우리를 진실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힘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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